[김만배게이트 前史]①수원 변두리 소년, 서초동에 마수 뻗다

편집자주김만배(58)는 대장동 사건의 핵심 중의 핵심이다. 검찰과 법원, 정치권이 모두 그의 입에 주목하고 있다. 김만배의 공식 직업은 기자였다. 1992년에 기자로 입문해 대장동 사건이 터질 때는 경제지 부국장대우 기자로 활동했다. 김만배가 현직 기자생활을 하면서 어떻게 수천억원대를 주무르는 부동산 시행업자 생활을 이중으로 할 수 있었을까. 그 궁금증을 풀기 위해 김만배의 시행업자 입문 전 행적과 대장동 사업권을 손대기까지 행적을 취재했다.
'서초동 만배형'으로 통한 김만배

뇌물공여 혐의로 기소된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 씨가 8일 오후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대장동 개발 사업 로비·특혜 의혹 관련 1심 선고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김만배는 1992년 일간스포츠 편집기자로 입사한 뒤 뉴시스를 거쳐 머니투데이에서 부국장까지 지냈다. 그는 기자 생활 절반 이상을 서초동에서 보냈다. 머니투데이 사회부 법조팀장으로 대법원과 대검찰청 등 주요 법조 기관을 15년간 출입했다.

그는 서울 서초동에서 '만배형'으로 불렸다. 배경에는 남다른 재력이 있었다. 지금도 서초동에서는 그의 씀씀이를 가늠할 수 있는 이야기가 일화처럼 전해진다. '김만배가 출입처에서 밥을 사지 않은 기자가 없다', '후배기자들에겐 용돈까지 챙겨줬다' 등 지금도 법조기자단 사이에선 그의 재력을 둘러싼 회고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돈을 쓰는 데 그만큼 거침이 없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언론계 인사와의 금전 거래 의혹 또한 김만배의 재력을 미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의혹이 제기된 언론인들은 적게는 1억원에서 많게는 9억원까지 김만배와 거래한 것으로 나타났다. 모두 김만배에게 돈을 빌린 경우인데, 그만큼 그가 ‘돈 많은 기자’로 통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김만배는 이런 재력을 바탕으로 법조기자단 사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얘기도 있다. 기자단에는 엄연히 총무 역할을 하는 간사가 존재하지만, 김만배의 경우 그 위 '좌장' 노릇을 했다는 것이다.

김만배가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한 건 2021년 9월께다. 그달 27일 서울 용산경찰서에 출석했다. 법률상 신분은 참고인이었다. 경찰이 그를 부른 이유는 이랬다. 회사에서 돈을 빌렸는데 용처가 불분명했다고 한다. 빌린 돈의 규모가 일반인 상식선을 넘어섰다. 수백억원으로, 기자가 만질 수 있는 단위가 아니었다. 수사당국은 여기서 답을 찾으려 했다. 성남 대장동 개발사업 비리 의혹. 김만배는 기자이면서 이 사업 시행사인 화천대유 대주주였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보름 뒤 검찰이 그를 다시 불렀다. 빌린 돈 상당액이 정치권이나 법조계 인사들에 대한 로비 자금으로 쓰인 것이 아니냐고 의심했다. 김만배가 조사에서 해당 의혹을 전면 부인하자, 검찰은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영장은 법원에서 기각됐다. 그해 10월14일 일이다.

유치됐던 구치소에서 나오는 순간, 그가 서초동에서 돈을 어떻게 썼는지 추측할 수 있는 일이 벌어졌다.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 대상자는 심사가 끝난 뒤 결과가 나올 때까지 구치소에 유치된다. 이때 소지품은 구치소에 맡겼다가 석방 시 돌려받는다. 김만배도 이날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소지품을 돌려받았다. 이 자리에서 그는 교도관에게 지갑에 있던 현금을 꺼내 간식비 명목으로 건넸다고 한다. 액수가 역시나 상식선을 벗어났다. 무려 165만원이나 됐다.

서초동에서는 김만배 재력의 근원지로 유복한 집안을 지목하는 사람이 많다. 그의 부친이 경기 수원시에서 유명한 부동한 시행업자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고급 외제차를 끌고 다니던 김만배를 가리켜 기자 생활은 취미로 한다는 얘기까지 기자들 사이에서 돌았다. 그가 법조기자 시절 쓴 기사 수가 이를 방증했다. 일반 기자와 비교해 현격히 적었다. 실제로 그가 대장동 개발사업에 뛰어든 2012년 4월부터 이듬해 말까지 20개월여간 쓴 기사는 5개에 불과할 정도였다.

김만배 본가가 있던 경기 수원시 장안구 이목동. 이 일대는 개발사업이 진행돼 과거 모습은 현재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수원서는 달랐다… '올챙이 시절' 김만배

수원에서는 그의 재력과 집안을 둘러싼 얘기가 전혀 달랐다. 아시아경제가 김만배의 본가가 있던 수원시 장안구 이목동(옛 이목리) 일대와 이웃 주민들을 취재한 결과, 그의 부친은 시행업이 아닌 목수 일을 했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이목리 마을에 거주했다는 한 주민은 "(김만배 집은) 잘 사는 집안이 아니었다"며 "집 한 채 있으면서 그냥 사는 집안이었다"고 했다. 김만배는 이런 환경에서 유년기와 학창 시절을 보냈다는 설명이다.

당시 김만배 집안 형편은 마을의 특성에서도 확인된다. 이목리는 수원 서북쪽 끝자락에 위치했다. 당시 변두리 중 변두리로 통했다. 수원에서 1970년부터 살았다는 한 시민은 "불과 20년 전만 해도 이목리라고 하면 포도밭과 딸기밭이 대부분이었다"면서 "가게를 하거나 농사를 짓는 몇몇이 촌락을 형성한 동네였다"고 회상했다. 20년 전이라고 하면 영통, 정자 택지지구가 들어서면서 수원내 상당 지역이 개발된 시기다. 이 무렵에도 김만배가 살았던 이목리는 시골에 머물러 있었다는 얘기다.

김만배 부친이 부동산 시행업을 했다는 소문의 출처도 찾기 어려웠다. 목수 생활을 접고 부동산 시행업에 뛰어들었을 가능성도 살폈으나, 수원 건축업계에서는 ‘금시초문’이란 반응이었다. 수원에서 50년 넘게 건축업에 종사했다는 한 사업가는 "당시 수원 건축업 시장은 크지 않아 누가 누군지 다 알 수 있었다"며 "목수 출신이 부동산 시행업으로 성공했다면 소문이 다 퍼졌을 텐데 그런 얘긴 들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 시절 김만배 역시 서초동 때와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고 한다. 이후 간식비로 교도관에게 165만원을 쥐여준 그였지만, 이전에는100여만원을 빌리는 처지였다는 얘기가 있다. 김만배의 한 고교 동창으로부터 돈 100만원 정도를 여러 차례 꿔가고 갚기를 반복했다는 것이다. 이 고교 동창은 현재 김만배와 연락이 끊긴 것으로 알려졌다.

경기 수원시 장안구 이목동 일대는 개발사업으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로 탈바꿈했다. H아파트는 김만배의 본가가 있던 자리이고, S아파트는 그가 거주했던 곳이다.

김만배는 수원에서 기자 생활도 했다. 역시나 서초동 김만배와는 거리가 멀었다. 일간스포츠 편집기자로 일하던 그는 2002년, 지인의 소개로 당시 신생 민영통신사였던 뉴시스 수도권본부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이때 그는 취재기자로서 첫발을 떼게 된다. 당시 뉴시스에서 김만배와 같이 일을 한 A씨는 "사회부 기자를 해보고 싶어했던 친구"라며 "편집기자만 해봐서 취재 능력도 떨어지고 기사도 상당히 못 썼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어 "기자가 기사를 못 쓰는데 무슨 영향력이 있었겠느냐"며 "일을 너무 못해 2년도 안 돼 그만둔 것으로 기억한다"고 전했다.

당시 김만배의 미미했던 존재감은 다른 주변 증언으로도 드러난다. 김만배와 수원 수성고 동문인 한 지역언론인은 "뉴시스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한 뒤 수원지역 언론동문회에 김만배가 딱 한 번 왔다"며 "그때 이미 지역 바닥에서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잡은 선후배들이 상당수였고, 김만배는 소외된 느낌을 받았는지 그 이후론 나오지 않았다"고 알렸다. 출입처에서도 그의 입김은 크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수원 법조기자단 소속이던 B씨는 "출입처에서 김만배에 대한 기억이 없다"고 했다. 경기지역 고위 공무원 출신 C씨도 "기사를 쓴 개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활동을 미미하게 했다"면서 "기사 자체를 썼다고 보기 힘든 기자"라고 밝혔다.

하지만 외곽을 겉돈 김만배의 수원 기자 생활 과정에서도 서초동 김만배의 씨앗은 분명 있었다고 한다. 붙임성이 좋았다는 얘기가 나온다. 당시 그와 수원 법조를 함께 출입했다는 A씨는 "김씨가 일면식도 없는데도, 부장검사들이 지나가면 인사를 하곤 했다"며 "한 부장검사는 나한테 ‘뭐 저런 친구가 다 있냐’며 칭찬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대장동 50억 클럽’ 논란으로 재판을 받은 곽상도 전 의원 등이 이 당시 맺어진 인맥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당시 곽 전 의원은 수원지검 특수부장이었다. 곽 전 의원은 성균관대 출신으로 김만배와 대학 동문이다. 김만배는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84학번이다.

다만, 대장동 일당에 조력한 대가로 아들을 통해 약 50억원(세금 공제 후 25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곽 전 의원은 지난 8일 1심 재판에서 무죄를 받았다. 검찰은 재판 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항소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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