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역사]② 한국의 '반도체 선구자' 강기동은 누구인가

[아시아경제 소종섭 트렌드&위켄드 매니징에디터] 대한민국 반도체의 역사는 1974년 1월 26일, 경기도 부천에 한국반도체주식회사(이하 한국반도체)가 설립되면서부터 시작된다. 대한민국 1호 반도체회사인 이 회사를 창립한 이가 강기동 박사다.

강진구 전 삼성전자 회장은 자서전 <삼성전자 신화와 그 비결>(고려원.1996)에서 “반도체의 미개지(未開地)에 최초의 본격적인 반도체공장을 설립한 것이 강기동 박사의 한국반도체였다”고 기록했다. 한국반도체는 이후 삼성으로 넘어가 삼성반도체가 됐고 오늘날 삼성전자로 이어진다.

그래서 강 박사는 ‘한국 반도체의 선구자’ ‘반도체의 씨를 뿌린 사람’이라고 불린다. 이처럼 한국 반도체의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이지만 그를 기억하는 이는 많지 않다. 강기동은 누구일까. ▶관련기사 [일요인터뷰]'반도체 선구자' 강기동 박사 "자식 같은 회사…삼성전자 잘돼야"

한국반도체 대표와 삼성반도체 사장을 강기동 박사는 한국 반도체의 선구자이지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사진=허영한 기자 younghan@

강기동은 1934년 12월 9일 함경남도 함흥에서 3남 2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적은 경남 김해 대저면이다. 아버지 강종무는 일본 유학(야마구치고교-동경제국대학 농업토목학과)을 마친 뒤 조선총독부에 근무하며 낙동강 유역에 저수지와 제방 등을 많이 만들었다. 할아버지 강정환은 경남의 유지였다. 강 박사는 청량초등학교-경기중-경기고를 거쳐 서울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이홍구 이회창 전 국무총리, 소립자 물리학자인 이휘소 박사, 서정욱 전 과학기술처 장관 등이 중·고교 시절 동기 친구들이다.

미국으로 유학 가 오하이오주립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아버지가 평소 “너는 전기 계통이니까 우리나라에 필요한 전기 기술을 배워 남이 못하는 큰일을 해야 한다”고 말한 것이 진로에 영향을 미쳤다. 경기여고, 연세대학교 물리학과를 나온 아내 김순호씨는 2018년 세상을 떠났다. 두 사람은 1남 1녀를 뒀다. 강기동은 현재 미국 네바다주 리노에 살고 있다.

서울 중구 필동에 살 당시 강기동 박사의 방 풍경. 제공=강기동

그는 중학생 때부터 청계천을 드나들면서 전기인두, 니퍼 등을 모으기 시작했다. 1951년 부산으로 피난 갔을 때 그곳에서 미국 아마추어무선연맹 기관지를 접하면서 아마추어무선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그때 부산 대신동 천막학교 시절에 물리반을 열어 후학들을 가르쳤고 그곳에서 경기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서울대 전기공학과에 합격한 뒤에는 틈만 나면 광화문 체신부를 찾아가 아마추어 무선을 허가해 달라고 했다. 당시는 아마추어무선이 생소한 분야였기에 이런 과정에서 간첩으로 오인 받기도 했다. 오해가 풀린 뒤에는 내무부 치안국 특수정보과의 요청으로 무선을 사용하는 간첩을 잡는 활동을 돕기도 했다. 1953년 혼자 치른 시험에 합격해 대한민국 1호로 아마추어무선통신사자격증(아26001-1953년 10월6일)을 취득했다.

강기동 박사는 우리나라 제1호 아마추어무선통신사이기도 하다. 제공=강기동 박사

이런 인연으로 강기동은 1955년 4월 20일, 서울 중구 봉래동 동국무선고등학교에서 열린 한국아마추어무선연맹 창립을 주도했다. 오하이오주립대 유학을 주선해 준 이덕빈씨, 훗날 한국반도체 창업 때 자금을 댄 김규한씨와의 인연이 이때 맺어졌다. 현재 아마추어무선연맹이 사용하는 서울 중앙우체국 사서함 주소도 당시 그가 쓰던 것이다.

오하이오주립대에 다닐 당시의 강기동 박사. 제공=강기동

강기동은 1958년 미국 유학을 떠나 오하이오주립대에서 반도체 연구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고 반도체연구소 설립을 주도했다. 가까이 지내던 이영덕 전 국무총리 부부가 귀국하게 돼 그 아파트를 물려받아 생활했다. 졸업한 뒤에는 애리조나 피닉스에 있는 모토롤라에 입사(1962년)했다가 실리콘밸리의 스튜어트워너사(1969년)로 옮겼다. 강기동은 당시 경기고와 서울대, 오하이오주립대 선배인 강대원 박사와 콜럼비아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페어차일드에 다니고 있던 경기고, 서울공대 전기과 후배인 김충기 카이스트 명예교수와 가까이 지냈다. 1973년 귀국한 강기동은 1974년 1월 미국에 ICII사, 경기도 부천에 한국반도체주식회사를 동시에 설립했다.

미국 ICII사 풍경. 제공=강기동

한국반도체가 삼성에 넘어간 이후에도 2년 가까이 삼성반도체 사장으로 재직했던 그는 1976년 미국으로 돌아갔다. 1982년 미국으로 찾아온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과 만나 반도체 사업을 새로 추진하기도 했으나 고심 끝에 정주영 회장의 사장 제의를 거절하고 사실상 은둔에 들어갔다(정주영 회장은 이후 자신이 직접 현대전자 사장을 맡아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다). 놀고 먹을 수는 없어 1990년대 초 원자력 잠수함용 파워 서플라이를 개발해 생계를 꾸려갔다. 60대 이후에는 아내와 볼룸댄스를 배워 경연대회에 나가 1등을 하기도 했다. 그가 세상을 향해 입을 열기 시작한 것은 2018년 아내가 세상을 떠난 이후부터였다.

강기동 박사가 현대그룹에 제출했던 사업계획서. 제공=강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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