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속 용어]EU도 만든다는 '핵심원자재법(CRMA)'이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수출선적부두 옆 야적장에 완성차들이 대기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유럽에 진출한 한국 수출 기업에 비상이 걸렸다. 소위 유럽판 '인플레 감축법(IRA)'이라 불리는 '핵심원자재법(Critical Raw Materials Act·CRMA)'이 내년 초 통과 예정인 탓이다. 법안은 유럽 내 안정적인 보급망 구축을 위해 해외 자원 및 부품 의존도를 줄여나가는 방향이 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EU의 원자재 관리 방침, CRMA란

유럽연합(EU) 27개국의 공동 시장 규제를 관할하는 유럽 집행위원회(집행위)는 일찍이 유럽 산업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여러 원료를 '핵심원자재(Critical Raw Materials·CRM)'로 지정해 왔다. 집행위는 지난 2011년 14개 광물을 첫 'CRM 목록'에 넣어 발표했으며, 이후 3년마다 목록을 갱신해 현재는 30여개에 이른다.

2020년 갱신된 유럽연합의 핵심원자재(CRM) 리스트. 리튬, 티타늄 등 친환경차량 및 에너지 설비와 관련된 소재가 포함됐다. / 사진=EU 집행위 공식 홈페이지 캡처

집행위는 세 가지 기준에 따라 CRM을 지정한다. 첫 번째는 '산업 연관성(Link to industry)', 즉 일반 제조업에 핵심적으로 쓰이는 원료를 의미한다. 두 번째는 '현대 기술(Modern technology)'로 스마트폰, 로봇 등 전자·자동화 산업과 연관된 희토류다. 세 번째는 '환경(Environment)'으로 2차 전지나 재생에너지 설비 등과 관련된 광물이다. 반도체부터 무선통신기기, 전기차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주요 EU 수출품에 들어가는 원료가 언제든 CRM에 포함될 수 있다는 뜻이다.

"리튬 최소 30% EU 안에서" 보호무역 법안 될 수도

과거 집행위는 CRM을 규정하고 공급 리스크를 분석하는 연구만 수행했을 뿐, 이와 관련된 규제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최근 집행위는 CRM의 역내 공급을 촉진하기 위한 CRMA를 내년 1분기(1~3월) 안에 입법하겠다고 밝혔다.

아직 CRMA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유럽산 광물 생산·소비를 북돋기 위해 중국, 아시아 등 다른 지역의 광물을 쓴 공산품을 차별할 경우, 미 IRA와 같은 보호무역주의 법안이 될 우려가 있다. 최근 발효된 IRA는 전기차 배터리에 들어간 원료가 미국 및 북미 대륙 원산지가 아닐 경우 정부 보조금을 지원하지 않는 조항이 들어가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벨기에 브뤼셀 EU 집행위원회 건물 / 사진=연합뉴스

이미 집행위 일각에선 보호무역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EU 정책 전문 매체 'EURACTIV'에 따르면 지난 9월 티에리 브레튼 내수 정책 담당 집행위원은 "유럽 내 정제 리튬 수요의 최소 30%, 전체 희토류의 평균 20%는 반드시 EU 내부에서 공급되어야 한다"고 발언했다.

CRMA가 유럽산 광물 비율이 낮은 공산품에 대해 추가 관세, 보조금 철회 등 차별적인 조항을 둘 경우 한국의 대(對)EU 수출 경쟁력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설령 관세가 부과되지 않더라도, CRMA로 인해 EU에 수출하는 해외 국가는 제품당 유럽산 재료 비율 등 각종 증명 서류를 요구받게 될 수도 있다. 중소기업 입장에선 매우 번거로운 비관세 장벽이 생기는 셈이다.

"자유 무역 원칙 지켜야" 국내 기업도 우려 전달

국내 기업들도 CRMA에 대한 우려를 집행위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26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유럽한국기업연합회(KBA 유럽) 및 한국무엽협회(KITA) 브뤼셀 지부는 공동명의로 의견서를 내고 "CRMA는 EU의 근본적인 무역 규칙인 자유 무역의 원칙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이들은 "자국 기업을 유리하게 하는 차별적인 법, 규제를 도입한 일부 국가에 의해 촉발된 보호무역주의 추세에 우려하고 있다"라며 "CRMA는 최소한의 행정적 부담, 과도하지 않은 자료 요구로 EU와 비(比)EU 기업 모두 지나치게 영향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범수 산업 매니징에디터 answer@asiae.co.kr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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