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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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푸틴의 요리사'라 불리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로 알려진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러시아의 미국 선거 개입을 시사하는 발언을 하면서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동안 비선 실세로 은밀히 활동하던 그가 정치·외교적 발언을 크게 늘리면서 자신의 입지와 영향력을 강화하자 러시아 정계에서도 존재감이 보다 부각되고 있다.
러시아 정계 내부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잇따른 패전으로 기존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후계자로도 거명되던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의 입지가 크게 약화하면서 그의 자리를 노리는 측근들의 정치적 행보가 더 횡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직 사령관들이 푸틴 대통령 측근들의 비판에 계속 경질되고 전투 현장에서 지휘체계 혼선이 가중되면서 러시아군은 한층 어려운 상황과 마주하게 될 것이란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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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현지시간) CNN에 따르면 프리고진은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게재한 논평을 통해 "러시아는 미국의 선거에 개입해왔고 현재도 그렇게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할 것"이라며 "우리만의 방식으로 조심스럽게, 정확하게, 외과수술 하듯이 할 것이며 우리의 정밀한 작전 기간에 신장과 간을 한꺼번에 제거할 것"이라고 밝혔다.
푸틴의 최측근 인사가 미국 선거 개입을 직접 시사하면서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프리고진은 현재 우크라이나 전쟁의 주요 선봉 부대를 맡고 있는 푸틴의 친위 용병대인 바그너 그룹을 이끌고 있으며, 지난 2016년 미 대선에서 러시아 댓글부대에 자금을 제공했다는 의혹을 받은 인물이다.
미 정보당국에서는 프리고진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본부를 둔 러시아의 친러여론 조성 기관인 ‘인터넷연구기관(IRA)’을 후원한 것으로 보고 있다. IRA는 일종의 댓글부대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정치활동을 펼치는 기관으로 알려져있다
미 당국은 IRA가 2016년 미 대선 당시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지원하고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비방하는 여론 조작을 주도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IRA의 미국 선거 개입은 일회성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고 있다는 의혹도 꾸준히 제기돼왔다.
특히 이번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도 IRA와 연계된 SNS 계정으로 미국의 우크라이나 군사 지원에 호의적인 민주당을 공격하는 메시지 등이 유통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미 정보당국도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CNN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IRA 소속으로 보이는 러시아인들과 프리고진을 제재 명단에 올린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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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고진은 러시아 내부에서도 정확한 이력이 알려지지 않은 미스터리한 인물로 알려져있다. 영국 BBC에 따르면 1961년생인 프리고진은 원래 어린 시절 육상선수로 발탁돼 훈련받았으나 18세 때 강도 및 사기 혐의 등으로 12년형을 언도받고 1990년 구소련 붕괴로 풀려나기 전까지 수감생활을 보냈다.
출소 후 핫도그 가게를 차린 그는 사업이 크게 성공했으며, 이후 요식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 러시아 최대 급식업체인 '콩코드(Concord) 케이터링'을 창립했다. 1996년부터 당시 대권 도전을 준비하던 푸틴 대통령의 전속 요리사로 발탁돼 비선 실세로 불려왔다. 그는 현재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주요 선봉 부대 인 용병부대, 바그너 그룹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그동안 비선 실세로만 알려져 표면적으로 잘 나서지 않던 그는 최근 푸틴 대통령과의 독대 횟수를 늘려가며 러시아 군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러시아 및 해외 매체들과 인터뷰를 자처해 우크라이나 전선 상황에 대한 러시아 국방부의 전략을 비판하고, 동원령 시행 이후에는 직접 사병모집을 독려하며 입지를 확대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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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이렇게 적극적인 정치적 행보를 보이는 이유는 푸틴 대통령의 최측근 자리로 알려진 국방장관직을 차지하기 위한 행보로 분석되고 있다. 기존에 푸틴 대통령의 후계자라는 평가까지 받았던 쇼이구 국방장관의 입지가 크게 위축되면서 푸틴의 최측근들끼리 경쟁이 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프리고진과 함께 최근 러시아 내에서 입지가 커진 푸틴 대통령의 또다른 측근, 람잔 카디로프 체첸군 사령관도 국방장관직을 노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그는 1999년 체첸 민병대를 조직한 이후 러시아 정부에 투항했으며, 이후 2008년 조지아 전쟁, 2017년 시리아 전쟁 등에 자신의 용병부대를 이끌고 참전해 푸틴 대통령의 총애를 받아왔다.
이러한 측근들의 입지 확대 속에 러시아 전선 사령관들에 대한 비판이 늘어나면서 러시아군의 지휘체계는 더욱 혼란스러워지고 있다는 평가다. 앞서 전날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러시아 중부군관구 사령관인 알렉산드르 라핀이 경질돼 자리에서 물러났다고 보도했다.
라핀 사령관은 현재 우크라이나의 공세를 받고 있는 동부 도네츠크의 주요 요충지인 스바토베 방어 병력을 지휘하던 현장 지휘관으로 해당 지역은 함락 위기에 처해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전선 상황이 위급한 상황에서 지휘관을 갑자기 교체한 셈이다.
특히 라핀 사령관은 앞서 지난 7월 우크라이나 전선에서의 공적을 인정받아 푸틴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받고, 영웅 칭호까지 수여되기도 했던 장군이다. 그러나 9월 이후 우크라이나의 반격이 거세지고 주요 전선에서 러시아의 참패가 이어지면서 각종 비난을 받아왔다.
라핀 사령관에 대한 비판에 앞장섰던 인물은 프리고진과 카디로프다. 프리고진은 "라핀이 훈장을 받을 만큼의 역할을 수행했는지 의심스럽다"며 그를 비난해왔고, 카디로프도 그가 계속 졸전을 벌이며 패전에 앞장서고 있다며 경질을 요구해왔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