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비비] 플랫폼 규제, '기업' 아닌 '윤리'에 초점 맞춰야

[아시아경제 명진규 기자] 프로파일링이라는 단어는 수년 전 전문용어에 가까웠지만, 지금은 대중문화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 중 하나다.

탐정 소설에나 등장하던 프로파일링이 하나의 학문으로 발전한 것은 ‘마인드 헌터’의 저자 FBI 수사관 존 더글러스의 공이 크다. 존 더글러스는 프로파일링 분야를 어휘 분석, 행동 패턴 분석, 데이터 마이닝 등 세 가지 요소로 정립했다. 전화, 편지 등 범인이 남긴 메시지를 분석하고 사용하는 방언과 용어에 따라 직업, 자라온 환경 등을 유추한다. 행동 패턴 분석은 사건 현장과 범행 시간을 통해 용의자의 직업과 연령을 파악하고 행동반경, 거주지, 주활동지를 판별해낸다. 마지막으로 데이터 마이닝은 무분별하게 수집된 증거들을 놓고 일정한 패턴을 찾아 용의자군을 만들어낸다.

이 세 가지 요소는 주요 플랫폼 기업, 즉 빅테크들이 소비자들에게서 수집하는 데이터와 동일하다.

시장조사업체 스태티스타는 지난 2010년 개인이 디지털 기기를 이용해 만들어 내는 데이터는 하루 1500건이었지만 2025년에는 5000건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4시간 내내 PC와 스마트폰, 블루투스 기기를 통해 쌓인 빅데이터는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고스란히 담게 된다. 데이터양이 늘어날수록 빅테크 업체들은 개개인의 빅데이터를 분석해 미래의 행동을 더 정확하게 예측해 낼 수 있게 된다. 인공지능(AI)은 방대한 데이터 마이닝 작업을 순식간에 끝낸다. 결국 빅데이터를 소유한 플랫폼 업체들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세상이 펼쳐지는 셈이다.

플랫폼이 가져온 편리한 세상의 ‘혁신’ 만큼 ‘윤리’를 고민해야 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컴퓨터 과학, 철학, 정치학을 가르치는 세 교수가 저술한 ‘시스템 에러’에서 저자들은 "우리가 오늘날 국가라고 생각하는 것이 시작된 이래 정부와 시민들은 데이터를 두고 끊임없는 줄다리기를 해왔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지금은 우리 스스로 개인 정보를 기꺼이 민간 기업에 넘겨 그들이 거의 아무런 제약 없이 정보를 수집하도록 해 ‘감지 자본주의’라고 이름 붙인 정치경제 상황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같은 상황이 우리나라서도 벌어졌다. ‘카카오 사태’로 우리는 아무 고민 없이 아주 사적인 정보까지 플랫폼 업체들의 서비스를 통해 주고받고 있다는 점을 각인하게 됐다. 대통령이 "카카오는 사실상 국가기간 통신망"이라고 언급한 것은 다소 과한 감은 있지만 일견 수긍이 가는 것도 사실이다.

‘시스템 에러’에서 저자들은 "(빅테크들은) 기술을 전혀 모르는 정치인들이 혁신의 발목을 잡는다고 생각해, 정치인들에 로비하고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돈을 쏟는다"고 지적한다. 구글이 입법을 저지하기 위해 정치권 로비, 광고는 물론 시민단체까지 지원한다는 점이 이번 국감을 통해 알려졌다.

해답은 정부에 있다. 국회를 비롯해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행정안전부, 공정거래위원회, 개인정보보호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전 부처가 카카오와 플랫폼 업계에 대한 규제를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규제 철학이 먼저다. 플랫폼 기업들의 문제점만 겨냥할 뿐 디지털 기술로 야기되는 윤리 문제는 찾아보기 어렵다. 개인들이 만들어 낸 막대한 양의 빅데이터, 이를 어떻게 바라보고 취급할지 규제 철학을 정립하는 것이 먼저다.

명진규 IT과학부장 aeon@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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