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은모기자
[아시아경제 구은모 기자] “와인 터널을 지금보다 더 확장해 관광명소로 경쟁력을 키우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서부건 산머루농원 대표는 15일 아시아경제와 인터뷰에서 제품의 품질만큼이나 판로에 대한 고민이 깊다고 말했다. 영세한 규모가 대다수인 전통주 업체들은 품질 좋은 제품을 생산하더라도 원활한 유통구조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 대표 역시 일반적인 유통채널에 의존해선 살아남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와이너리에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시설 등을 마련해 관광객을 유치하고 이를 통한 판매와 홍보 등으로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산머루농원에는 국내에선 보기 드문 와인 숙성 터널이 있다. 깊이 15m, 길이 73m에 이르는 지하 터널을 뚫은 건 산머루농원의 전·현직 대표인 서우석·서부건 부자다. 서 대표는 “머루 농사에서 머루 와인 사업으로 외연을 확장하면서 와인 숙성 시설이 필요했다”며 “이왕 시설을 짓는다면 단순히 창고가 아닌 관광객들도 와서 구경할 수 있는 숙성고로 꾸몄으면 좋겠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고 말했다. 그렇게 2004년 파주시의 지원을 받아 사시사철 15도(℃) 안팎의 온도를 유지되는 천연 지하 와인 저장고가 탄생했다.
와인 숙성 터널은 산머루농원이 와이너리를 넘어 관광지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됐다. 천연 와인 셀러에 2009년 머루 와인·잼 만들기 등 체험 프로그램까지 더해지면서 관광객이 하나둘 늘어났다. 하지만 국내 관광객만으로는 머루 따기 체험을 할 수 있는 가을철 성수기와 나머지 비수기가 뚜렷해 한계가 명확했다.
그는 외국인 관광객으로 눈을 돌렸다. 서 대표는 “와이너리 소개 자료를 만들어 경기관광공사를 찾아갔다”며 “처음엔 반신반의했지만 와이너리와 터널 등을 직접 둘러보고는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후 서 대표는 경기관광공사가 진행하는 해외 세일즈 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2012년 12월부터 외국인 관광객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방문객 수입이 와인 판매 수입과 맞먹을 정도로 성장했고, 한 해 방문객이 8만명을 넘어서기도 했다.
하지만 호시절은 영원하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되면서 외국인 관광객은 물론 국내 관광객들의 발길마저 단번에 끊겼다. 서 대표는 “누구도 예상 못 한 일로 너무나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며 “하루아침에 문을 닫을 뻔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다행히 최근에는 조금씩 회복세를 보이고 있어 다시 내년을 기대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당장 10월과 11월 싱가포르와 베트남 출장도 예정돼 있어 외국인 관광객 유치도 재개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서 대표는 어려서부터 농업인의 꿈을 키워왔다. 그는 “아버지 곁에서 보고 배우며 자연스럽게 이 길을 가고 싶었다”며 “아버지가 머루라는 기존에 없던 시장을 개척해 놓은 상황에서 명맥이 끊기도록 두기는 아쉽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한국농수산대학에 1기로 진학했고, 졸업 이후 산머루농원에 곧바로 합류했다. 2012년부터는 아버지 서우석 씨의 뒤를 이어 대표직을 맡고 있다.
그는 아버지가 와인 제조시설의 기반을 닦은 만큼 자신은 머루 와인 ‘머루 드 서’ 등의 브랜드를 토대로 와이너리와 제품을 결합해 통합 브랜드로 성장시켜나가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다. 최근에는 전통주 콘텐츠·유통 플랫폼 '대동여주도'와 손잡고 캠핑용 팩 와인을 출시하며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서 대표는 “최근 전통주 붐이 조금씩 일고 있는 데다 캠핑 인구가 늘고 있어 그쪽 시장을 타깃으로 휴대와 보관이 편리한 제품을 출시했다”며 “초기 반응은 좋은 편이고 수출 논의도 이뤄지고 있어 기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더 나아가 장기적으로는 와인터널 확장과 이를 통해 파주 낙농가 등과 연계한 와인·치즈 생산 판매 등으로 관광객 유치 확대를 구상하고 있다. 와인터널을 100m 이상 연장해 관광지로서의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와인은 물론 숙성조건이 유사한 지역 낙농가의 치즈 등 유제품의 숙성시설과 판매처의 역할을 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최근 와인 열풍이 불고 있지만 국산 와인 등으로까지 바람이 미치고 있진 않다”며 “품질 좋은 머루 와인을 토대로 현장으로 고객들을 끌어와 산머루농원의 성장은 물론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구은모 기자 gooeunmo@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