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우기자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중국의 대만 침공 시 군사 개입을 천명하며 대만정책의 대대적 전환을 예고하면서 동북아시아 안보에 지각변동이 일고 있다. 미국이 유사시 대만 방어에 나설 경우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내 미국 동맹국들은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중국, 대만과 사업 관계에 있는 국내 기업들도 대만 침공 가능성에 예의주시하며 유사시에 대비한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내 대만 문제 전문가 중 상당수는 중국이 향후 10년 이내 대만 침공에 나설 것으로 전망하며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종신집권체제가 완성될 2027년 전후로 침공이 실시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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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지난달 10일부터 이달 8일까지 미국 내 대만 문제 관련 전·현직 관료 등 전문가 64명을 대상으로 중국의 대만 침공을 주제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중국이 향후 10년 이내에 대만에 대한 상륙작전을 전개해 침공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63%가 "가능성이 있다"고 답했다. "그럴 것 같다(8%)" "반드시 그럴 것(1%)"을 합치면 전체 응답자의 72%가 10년 내 대만 침공 가능성을 높게 본 것이다.
지난달 초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의 대만 방문 이후 중국의 대만 침공 우려가 한층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펠로시 방한에 대한 항의 표시로 중국은 대만 포위 작전을 벌었으며 이후에도 공격용 드론을 띄우는 등 무력 도발을 이어가고 있다. 중국의 대만 포위는 전쟁 시뮬레이션을 연상시킨다는 평가가 많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18일 CBS의 ‘60분’ 방송에 출연해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면 개입할 수 있다는 발언을 했다. 이 발언 직후인 지난 20일에는 미국과 캐나다의 군함이 대만해협을 통과했다. 이와 별도로 미 의회는 대만을 동맹국으로 대우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대만정책법(TPA) 처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법이 통과된다면 중국의 반발과 군사 도발 강도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2027년을 중국의 대만 침공 분수령으로 보고 있다. 2027년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3연임을 마치고 종신집권체제 구축을 시도하는 해이자 중국 인민해방군 건군 100주년이 되는 해로 중국 정부가 앞서 밝힌 군대 현대화작업이 완료되는 시점이다. CSIS 조사에서는 전체 응답자의 83%는 2027년까지는 중국이 대만에 직접적인 군사적 침공에 나설 가능성이 적다고 답했다. 시 주석이 종신집권을 위한 기반 다지기에 집중해 대만 침공에 직접 나설 가능성이 적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2027년 시 주석이 3연임을 마치고 4연임에 접어들기 위해 중화민족 통일이라는 위업 달성이 필요한 만큼 모험적인 침공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미국 싱크탱크인 독일마셜펀드의 보니 글레이저 국장은 "시 주석은 중국군의 준비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대만이 독립을 구체적으로 추진한다면 전쟁을 서슴지 않고 벌일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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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대통령의 이번 대만 방어 발언이 미국의 대대적인 대만정책 변경을 시사한 발언이란 해석도 나오고 있다. 40년 넘게 고수해온 ‘전략적 모호성(Strategic Ambiguity)’ 정책에서 ‘전략적 명확성(Strategic Clarity)’ 정책으로 전환된다는 것이다.
앞서 미국은 1979년 중국과 수교하고 대만과 단교하면서 대만관계법을 제정했다. 해당 법안은 중국 정부가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 원칙에 입각해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진 않지만 대신 미국이 대만에 자기방어수단을 계속 제공할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이다. 대만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진 않지만 중국이 대만에 대한 무력침공, 통일을 하지 못하도록 견제하는 전략적 모호성 정책을 통해 대만해협의 현상유지를 이끌어낸다는 정책이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집권 이후 줄곧 중국의 침공 시 대만을 미군이 직접 방어할 것이라며 전략적 모호성 정책에 부합하지 않는 발언을 했다. 지난해 8월 이후 대만방어 약속은 이번이 네 번째다. 미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4번 연속 대만방어를 약속한 시점에서 더 큰 의지와 명확성을 보여줌으로써 중국에 대한 억지력을 재확립하려는 시도"라고 분석했다.
미국이 전략적 명확성 정책으로 완전 전환하고, 유사시 대만 방어에 나서겠다고 공식 선언할 경우 중국의 무력도발은 한층 강화될 전망이다. 다만 미 정계 내에서도 중간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부담이 큰 사안이라 급진적인 전략변경이 이뤄질지는 아직 미지수다.
CNN에 따르면 현재 미 의회에서 검토하고 있는 대만정책법(TPA)은 이번 회기 내 통과될지 불투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 7월 TPA 법안이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로 넘어갈 당시 백악관에서 더 많은 검토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요청이 들어갔다. 이후 핀란드와 스웨덴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 허용 법안이 우선 통과되며 해당 법안의 의결은 뒤로 밀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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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대만을 동맹국으로 간주해 중국의 침공 시 직접 방어에 나설 경우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내 미국의 주요 동맹국들도 전쟁에 따른 영향을 받을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미국과의 상호방위조약상 대만 방어에 참전해야 할 의무는 없지만 미국의 지원 요청 시 이를 무시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의소리(VOA) 방송에 따르면 한국과 미국의 상호방위조약은 양국이 제3국으로부터 침공당했을 때 자동적으로 개입하는 조항을 두고 있다. 그러나 대만 방어는 상호방위조약에 포함되지 않는 내용이라 대만이 중국의 침공을 받더라도 한국이나 다른 동맹국이 자동으로 참전하게 되진 않는다.
그러나 주한미군이 대만 방어를 위해 출병하거나, 미국 정부가 한국 등 동맹국에 직접적인 지원 요청을 하게 될 경우 직·간접적인 여파를 피할 수는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부에서는 주한 미군을 한반도에 묶어 두기 위해 북한이 국지전에 나설 수도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 경우 미국으로서는 대만과 한반도를 동시에 대응해야 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미국 측도 유사시 한국에 지원을 요청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폴 러캐머라 주한미군 사령관은 지난 19일 미 싱크탱크인 한미연구소(ICAS)가 주최한 화상 포럼에 참석해 대만 유사시 한국의 군사적 지원을 바라는 입장이냐는 질문에 대해 "그 말에 동의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라며 "다만 각 동맹국은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고, 결국 한국인들 스스로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밝혔다.
이어 "대만 유사시 한반도와 주한미군에 끼칠 영향에 대비하고 있으며 비상계획을 세우고 있다"며 "중국의 대만 침공 시 파급효과는 한 지역에 국한되지 않을 수 있으며 매우 빠르게 역내와 세계로 확산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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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가운데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23일(현지시간) 뉴욕에서 회담할 예정이다.
블링컨 국무장관과 왕 외교부장이 만나는 것은 지난 7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개최된 주요 20개국(G20) 외교장관 회의에서 5시간에 걸쳐 회담한 이후 2개월여 만이다. 이번 회담에서도 대만 문제가 핵심 쟁점이 될 전망이다.
왕이 외교부장은 지난 19일에도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을 만나 "급선무는 대만 문제를 잘 통제하는 것으로, 그렇지 않으면 미·중 관계에 판을 뒤집는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현우 기자 knos84@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