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규민기자
10일 오후3시께 충북 괴산에 위치한 국립 괴산호국원에 사회적 거리두기가 풀린 첫 명절을 맞이해 성묘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사진=오규민 기자 moh011@
[아시아경제 오규민 기자] “살아생전 술을 그렇게 좋아했는데...”
추석 연휴 당일 지난 10일 오후 3시께 충북 괴산에 위치한 국립 괴산호국원.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없는 국립묘지는 성묘를 하러 온 인파로 가득 찼다. 호국원 입구서부터 수십 대의 차량이 길가에 주차돼있었다. 입구를 지나 주차장에 이르자 제1 묘역으로 올라가기 위한 버스가 대기 중이었고 수십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사람이 많아 내 가족들은 걸어 올라가기로 결정했다. 주차장을 지나면 현충관과 현충 광장이 마련돼 있다. 그 사이로 올라가면 제1 묘역이 나온다. 아직 제2 묘역과 제3 묘역은 조성 중이다. 8월 기준으로 현재 이곳에는 1만5000여기가 안장돼있다고 한다.
국립 괴산호국원은 2019년에 개원했다. 공식 홈페이지 설명에 따르면 조국 수호를 위해 신명을 바치신 유공자들이 영면하는 호국의 성지로 조성됐다. 국립묘지는 크게 3가지로 나뉜다. 국가유공자와 대통령 등을 안장하는 국립현충원이 서울과 대전에 위치 해있으며 민주열사들을 안장하는 국립민주 묘지 그리고 6.25 참전 용사 등을 모시는 국립호국원이 있다.
괴산호국원에는 기자의 외할아버지가 묻혀계신다. 외할아버지는 6.25 참전 용사다. 의무병으로 복무하시면서 아픈 병사들에게 주사를 놔줬다고 한다. 무사히 전역하시고 평범하게 고향인 전남 완도의 아주 작은 섬마을에서 농사를 지으시면서 살았다. 우연히 외할아버지는 기자가 7살이던 1998년 6월 25일에 돌아가셨다.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부모님 말씀에 따르면 소식을 듣고 기자는 ‘펑펑’ 울었다고 한다. 친할아버지가 없든 기자가 뵈었든 유일한 할아버지였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봉안담 옆에 개폐기 보관함이 있어 개폐기를 이용해 박스를 열어볼 수 있다. 박스 안에는 항아리와 함께 할아버지의 성함과 가족들의 이름들이 쓰여 있었다./사진=오규민 기자 moh011@
기자는 이곳에 모신 외할아버지를 처음 뵈었다. 2년 전 기자가 군대에 있을 때 외할아버지가 묻혀 계시던 섬마을에 더 가기 힘들어져 장지를 옮기기로 외가댁 친척들이 결정했다. 섬마을에 홀로 계시며 명절마다 뵈었던 외할머니는 96살의 나이로 건강이 좋지 않아 현재 경기도 김포의 한 요양병원에 계신다. 코로나19로 면회가 제한돼 몇 년째 얼굴을 뵙기도 힘든 상황이다. 이러한 사정들이 겹친 상황에서 참전용사들이 묻힐 수 있다는 호국원의 존재를 알고 옮기게 된 것이다.
외할아버지는 제1 묘역에서도 봉안담에 계셨다. 화장 후 남은 유골 가루가 담긴 항아리를 일정한 크기의 박스에 담아 보관하는 형태다. 박스는 평소 닫혀 있으며 ‘육군 하사 전OO'이 쓰인 명패가 붙여져 있다. 봉안담 옆에 개폐기 보관함이 있어 개폐기를 이용해 박스를 열어볼 수 있다. 박스 안에는 항아리와 함께 할아버지의 성함과 가족들의 이름들이 쓰여 있었다.
외할머니의 면회가 제한된 상황에서 외할아버지가 계신 곳이라도 가고 싶으셨던 기자의 어머니는 할아버지의 사진을 보더니, 빛이 바랬다며 “평소 술을 그렇게 좋아하시더니 사진도 누렇게 나왔다”라며 웃음 지었다. 아버지와 함께 외할아버지와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며 마지막 기도를 올리고 아버지는 박스를 닫으며 “아버님, 또 찾아뵙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국립묘지를 찾은 사람들은 각양각색이었다. 우리 가족 뒤쪽에 계시던 40대 남성분은 홀로 찾아와 부모님 사진을 보며 한동안 앉아계셨다. 항아리를 땅에 묻는 자연장지에 부모님을 모신 한 가족들은 10여명이 모여 고개를 숙인 채 기도를 하고 있었다./사진=오규민 기자 moh011@
국립묘지를 찾은 사람들은 각양각색이었다. 우리 가족 뒤쪽에 계시던 40대 남성분은 홀로 찾아와 부모님 사진을 보며 한동안 앉아계셨다. 항아리를 땅에 묻는 자연장지에 부모님을 모신 한 가족들은 10여명이 모여 고개를 숙인 채 기도를 하고 있었다. 박스 앞 마련된 제사상을 차릴 수 있는 대리석에 차례 음식을 분주하게 올리는 부부도 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없는 첫 명절. 많은 사람이 조상님들을 뵙고 가족들의 정을 나눈 시간이었다.
오규민 기자 moh011@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