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영기자
[아시아경제 전진영 기자] 최고기온 34도, 도로 아스팔트가 절절 끓는 날. 이런 날은 펄펄 끓는 순대국밥을 먹고 땀이 흐르는 이마를 닦고 나오고 싶다. 발걸음이 향한 곳은 공덕 주민이라면 다 안다는 30년 전통의 순대국밥 노포, 호남식당이다.
가게는 서울지하철 5호선 공덕역 4번 출구 근처에 있다. 가게가 작고 낡아 ‘순대국 전문 호남식당’이라는 간판과 ‘진짜 원조 순대국 전문’이라는 창에 붙은 문구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면 지나치기 쉽다.
식당은 노부부와 두 아들 2대가 운영한다. 아버지는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다. 처음에는 자식들도 모르게 순댓국 가게를 차렸는데, 30년 동안 매일 새벽 한시부터 가게에 나가 육수를 끓여 손가락 지문이 다 닳았다. 건강이 나빠져 재작년부터 삼형제 중 두 아들이 가게를 물려받았다. 큰아들이 새벽에 나와 사골국을 끓이고 작은아들이 낮에 식당을 본다. 아들들이 서울대를 나왔고 한 명은 대기업 임원 출신으로 여전히 스카우트 제의도 들어오지만, 식당을 물려받는 길을 선택했다.
아들들은 “순댓국을 끓이고 파는 일은 힘이 많이 든다”며 나이든 아버지가 가게를 보는 것을 말리고 있으나, 방문한 날에도 직접 아버지가 나와 주문을 받고 순댓국을 상에 내왔다. 2대가 보존한 30년 노포감성 덕분에 가게는 종종 드라마에도 등장한다. 서울서부지방법원과도 가까워 ‘검사내전’과 같은 법조 드라마에서 검사들이 순댓국에 술잔을 기울이는 곳으로 나왔다.
방문한 날에도 호남식당은 동네 사랑방을 방불케 했다. 단골들은 들어올 때부터 사장님에게 인사를 건넸다. 가게 안에는 혼자 순댓국을 시켜 소주를 기울이는 50대, 회사 일 끝나고 술잔을 기울이는 30대, 거동이 불편한 노인까지 다양했다. 순댓국 보통은 8000원으로 시키면 맛보기 순대 한 접시가 따라 나온다. 푸짐한 인심에 처음 온 손님들은 “이거 안 시켰다”며 놀라기도 한다. 찰순대 5점, 간, 머릿고기 등 부속까지 골고루 나온다.
순댓국은 흔히 생각하는 뽀얀 국물이 아닌 빨간 국물이다. 호남식당이라는 이름에 맞는 전주식 순댓국의 특징이다. 순댓국에는 깻잎이 들어가고, 양념장이 없는 대신 양념된 새우젓이 나온다. 국물은 끈적하게 입술에 달라붙는 느낌보다는 깔끔하게 떨어지는 맛이다. 부속이 푸짐하게 들어가 첫입부터 마지막 입까지 건더기와 함께 먹을 수 있다.
이날 혼자서 국밥에 소주 한 병을 비웠다. 가게 손님들은 무슨 사연이 있어 젊은 여자 혼자 국밥에 소주를 곁들이는지 한 번씩 앉은 자리를 쳐다봤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부른 배를 두드리며 나왔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