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슬기기자
[아시아경제 윤슬기 기자] 6·1 지방선거 최대 승부처인 경기도에서 김동연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김은혜 국민의힘 후보 간의 경쟁의 막이 올랐다. 두 후보의 경쟁 과정에서 전임 경기도지사이자 유력 대권 후보였던 이재명 민주당 상임고문이 지속적으로 소환되면서 서로 다른 '이재명 사용법'에 눈에 띈다. 김동연 후보는 '이심'(李心·이재명의 의중)을 업고, 김은혜 후보는 '이재명 도정'을 비판하는 방식으로 각자의 존재감을 부각하는 모습이다.
거대 양당의 경기도지사 후보가 선출되면서 본격적인 지방선거 레이스가 시작됐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가 경기도지사 후보로 최종 확정됐다. 김 후보는 '새로운 물결'을 창당한 뒤 지난 20대 대선에서 출마했다가, 이 고문과의 단일화를 선언한 바 있다.
불과 대선을 일주일 앞두고 이뤄진 단일화에 대해 김 후보는 "'정치교체'를 위한 출발점"이라고 설명했다. 두 사람이 기득권 정치를 타파하는 '정치개혁'이라는 대의에 뜻을 모으고 정책적 연대를 하겠다는 것이다. 단일화 후 김 후보는 이 고문의 선거를 적극 도우면서 '정치적 동지'로 자리잡았다.
이후 민주당은 새로운물결에 합당 제안을 했고, 당대표였던 김 후보가 이를 수용했다. 서울시장과 경기도지사 출마를 고민하던 김 후보는 경기도지사 출마를 선택했고, 민주당 경선을 거쳐 경기도지사 후보로 최종 선출됐다.
김 후보는 지방선거에 출마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면서 줄곧 이 고문과의 인연을 강조해왔다. 그는 지방선거 출마를 결정하기 전인 지난달 15일 YTN 라디오 '황보선의 출발 새아침'에 출연해 "(이 고문과의 단일화를)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며 "선거 다음 날 새벽에 만나 여러 가지 위로도 해 드리고 며칠 전에 통화를 한 번 했다"고 언급했다. 민주당 경기도지사로 확정된 이후인 28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도 "경선 결과 나오고 바로 (이재명 전 경기지사와) 통화했는데, 돕겠다고 답을 주셨다"고 말했다.
김 후보가 이 고문을 지속적으로 언급하다 보니 '이심'을 등에 업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고문은 대선 패배 이후 '개딸'(개혁의딸)로 불리는 2030 여성 등이 주축이 된 견고한 정치 팬덤을 형성했고, 민주당 대선 역사상 최다 득표를 기록해 '등판론'이 꾸준히 제기되면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 전임 경기도지사였던 이 고문이 경기지역화폐, 청년기본소득 등 청년정책, 공공버스 등 버스 서비스 개선 및 교통편의 등 괄목할만한 도정 성과를 보였던 것도 김 후보가 '이심'을 앞세우는 데 한몫했다. 김 후보는 22일 의정부시에 위치한 경기도 북부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기본소득, 공공배달 플랫폼, 공공기관 이전, 일산대교 통행료 무료화 등 이 전 지사가 추진한 정책들에 찬성하고 있다"며 "이재명 전 경기지사가 추진한 정책 방향에 대해 전적으로 같은 생각이며 김동연 색깔을 더해 계승하고 발전시키겠다"고 밝혔다.
반면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로 출마하는 김은혜 후보는 '이재명 도정'을 비판하는 방식으로 이 고문을 소환하고 있다. 김 후보는 28일 수원에 있는 경기대 기숙사를 찾아 "소통의 도지사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앞서 2020년 12월 이 고문은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병상 부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경기도 기숙사를 치료센터로 긴급동원했는데, 이 과정에서 '불통 논란'이 벌어진 바 있다. 당시 경기대 측은 지역사회 공헌 차원에서 1058실 규모의 기숙사 전체를 병상 및 생활치료시설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키로 했지만, 기말고사를 치르던 학생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김 후보는 경기대를 방문한 뒤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오늘 기숙사에서 만난 한 학생은 2020년 군에서 막 복학한 당시 상황을 기억하며 이재명 전 지사의 '불통 도정'을 지적했다"며 "도지사의 자리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 무조건적으로 돌진하는 자리가 아니다. 저 김은혜는 결과 뿐 아니라 과정도 아름다운 도지사가 되겠다"고 말했다. 신속하고 과감한 일처리로 입지를 다졌던 이 고문의 도정을 평가절하하면서 차별화를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다 보니 김동연 후보와 김은혜 후보는 서로를 각각 '이재명 아바타', '윤석열 아바타'라고 부르며 연일 신경전을 벌이거나 도지사 자질 등을 놓고 선거 초반부터 날선 공방을 주고받고 있다. 김은혜 후보는 25일 국민의힘 경기도지사로 확정된 후 출연한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민주당 후보분들이 벌이는 일명 '이재명 아바타' 경쟁이 본선에서 반드시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김동연 후보는 27일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 김은혜 후보를 향해 "'윤석열 아바타' 대변인이라는 얘기를 많이 듣고 있지 않나"라며 "검찰개혁, 국무위원 인사 등 정쟁이 될 소재가 많다. (선거전이) 진영논리, 프레임 씌우기 이런 것으로 갈까 걱정"이라고 응수했다. 초선인 김은혜 후보가 '거물급 인사'인 유승민 전 의원을 꺾고 국민의힘 경기도지사로 선출되며 '윤심'(尹心·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의중) 논란이 일었던 것을 겨냥한 언급으로 해석된다.
김동연 후보는 김은혜 후보의 자질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그는 "김은혜 후보는 국정 경험이 좀 일천하시기 때문에, 또 경제 운영이나 나라 살림, 민생과 관련된 일을 직접 하신 분이 아니기 때문에 저와 대결에서 도민의 삶의 질이나 미래에 대한 것보다는 정치공방이나 정쟁으로 흐르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은혜 후보 측은 즉각 반발했다. 김은혜 캠프의 황규환 대변인은 "김동연 후보가 '국정 경험이 일천하다'는 폄하, '윤석열 아바타'라는 자극적인 선동으로 정쟁을 유발했다"며 "말로는 정책선거 하자면서 국민의 눈과 귀를 흐리는 구태정치로 일관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편,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두 사람이 오차범위 내 치열한 접전 양상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29일 아시아경제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 27일~28일 경기도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10명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무선 90%·유선 10% 자동응답 방식,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에서 차기 경기도지로 적합한 후보를 물은 결과 김동연 후보 43.3%, 김은혜 후보 43.9%로, 두 후보간 격차는 오차범위 내인 0.6%p(포인트)로 집계됐다. 자세한 조사 개요는 리얼미터 홈페이지나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
윤슬기 기자 seul97@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