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기자
[아시아경제 박현주 기자] 장애인단체의 지하철 시위를 두고 정치권에선 잇단 설화가 빚어졌다. 이런 가운데 장애인 당사자 혹은 장애인 가족인 의원들이 소속 정당과 관계없이 앞장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돋보이면서 정치권에 더 많은 다양성이 필요하단 해석이 나온다.
'혐오 정치'라는 비판을 받는 이 대표는 시위 방식에 대한 정당한 문제를 제기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31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장애인단체의 시위 취지와 주장에는 공감하지만, 다수의 불편을 초래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하철 시위를 벌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이 아닌 한국지체장애인협회(지장협)와 정책적 협력관계를 구축해 나가겠다는 뜻을 지난 29일 밝히기도 했다. 지장협은 전장연의 시위방식을 '불법 시위'로 규정하며 "국민들이 이해할 수 없는 시위를 멈춰 달라"고 호소한 단체다.
그러나 차기 여당 대표로서 교통약자의 이동권 요구에 '언더도그마', '시민 볼모', '독선' 등의 어휘를 사용한 것이 적절치 못한 대응이었단 지적은 피할 수 없었다. 자칫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조장하고 혐오를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다. 특히 지난 24일 최고위 회의에 참석한 이 대표는 오는 6·1 지방선거 공천에서 소수자 할당제를 적용하지 않겠다고도 밝힌 바 있는데, 할당제가 국회 다양성을 위해 고안된 제도라는 점에서 소수자의 국회 진입을 어렵게 만들었다는 비판도 받았다.
◆ 여야 없이 앞장선 최혜영·장혜영·김예지…장애인 당사자거나 가족이거나
이같은 상황에서 이 대표의 발언을 규탄하는 데 가장 먼저 나선 것은 장애인 혹은 장애인 가족을 둔 정치인들이었다. 척수장애인인 최혜영 민주당 의원과 중증발달장애인 동생을 둔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지난 25일 전장연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었다. 최 의원은 "장애인단체 시위로 인한 시민의 불편과 갈등은 정치권이 이용할 소재가 아니라 해결해야 할 과업"이라며 "장애인단체의 이동권 보장 요구에 인질, 볼모, 부조리를 운운하며 서울경찰청에까지 조치를 요구하는 모습에 새로운 정권에 대한 깊은 두려움이 생긴다"라고 지적했다.
장 의원도 "차기 여당 대표로서 최소한의 자각이 있다면 지금은 교통약자를 공권력으로 진압하라는 경솔하고 위험천만한 발언을 할 때가 아니다"라며 "약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는 못할망정 공권력을 동원해 진압하라는 과잉된 주장을 거침없이 내놓는 차기 여당 대표의 공감 능력 제로의 독선이 참으로 우려스럽다"라고 비판했다.
교통약자의 어려움에 공감하는 데는 여야가 따로 없었다. 이 대표와 같은 당인 김예지 의원은 지난 28일 전장연 시위 현장을 직접 찾아갔다. 그가 무릎을 꿇고 이 대표의 발언에 대해 대신 사과하자 현장에선 탄식이 터져 나왔다. 김 의원이 국회의원인 동시에 장애인 당사자였기 때문에 당대표의 발언을 감싸기보단 직접 나서 사과하고 해결을 촉구하는 길을 택한 것으로 읽힌다. 시각장애인인 김 의원은 지난 2020년 안내견과 함께 국회에 첫 동반 출입한 인물이다.
다운증후군을 앓는 딸을 키우는 나경원 전 의원도 힘을 실었다. 그는 지난 28일 페이스북에서 전장연의 시위가 시민 불편을 초래한다는 점을 꼬집으면서도 시위를 조롱하거나 비난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나 전 의원은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면서 수없이 좌절하고, 현실에 부딪히면서 느꼈던 것은 바로 법과 제도가 제대로 안 되어 있으면 뗏법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라며 "전장연의 '그때 그때 달라요'의 시위태도도 문제이지만 폄훼, 조롱도 정치의 성숙한 모습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 때아닌 '학벌논란'도…박지현은 "능력 평가 기준 학벌 아냐" 정치권 다양성 강조
이 밖에도 정치권에선 때아닌 '학벌 논란'이 일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이른바 '서오남(서울대·50대·남성)' 위주로 구성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성별과 세대, 학벌과 지역 등을 아우르지 못한 인적 구성이었단 지적이다.
이런 가운데 박지현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명문대 출신이 아니라는 이유로 '학벌 공격'을 받아야 했다. 박 비대위원장이 서해수호의 날을 맞아 올린 추모글에서 천안함 피격사건과 제2연평해전을 혼동하자 그의 학벌을 문제 삼는 이들이 생겨나면서다.
박 비대위원장은 자신을 둘러싼 비판을 향해 학벌만으로 능력을 재단할 수 없을뿐더러 정치권에 다양성이 많아져야 한다고 맞받아쳤다. 그는 지난 26일 유튜브 채널 '시사인' 라이브 영상에서 "소위 스카이(SKY·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출신이 정치를 이제껏 해왔는데 그랬으면 정치판은 완벽해야 되는 것 아닌가"라며 "제가 민주당 안에 들어와 이야기하는 것이 정말 다양성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누구든지 학력을 따지지 않고 정치할 수 있어야 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 와야 한다. 능력 평가 기준이 오로지 학벌이 돼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전문가는 정치권 내 다양성이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장은 "학벌 논란에서 알 수 있듯 우리 사회는 자본을 더 많이 축적하는 것만을 능력으로 보고 있다. 어떤 것을 능력으로 규정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며 "여성, 장애인 등 소수자가 능력이 부족해서 정치권 진입이 어려운 것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회가 우리 사회의 비례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우리 사회 모습을 그대로 국회가 가져오려면 더 많은 비례성을 확보해야 한다. 등록장애인만 5%가 넘고 등록하지 않은 장애인까지 포함하면 훨씬 많은 수의 장애인이 있다. 이들을 어떻게 대표할 것인가. 이 문제는 여성, 청소년, 청년 그리고 다양한 직업인의 실제 비율을 어떻게 국회에 반영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로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비례성 확보를 위한 정치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소장은 "기득권 챙기기 정치는 국민들이 더 이상 바라지 않을 뿐더러 실패할 수밖에 없다"며 "빠른 시일 내에, 이번 6·1 지방선거에서부터 연동성 비례대표제 등 좀 더 적극적이고 선진적인 다양성 보장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또 다당제 등 비례성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선진적 국회의 모습이자 정치 민주주의가 확립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박현주 기자 phj0325@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