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영기자
26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한 아파트의 흡연자 입주민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 협조문.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아시아경제 김소영 기자] 아파트 등 공동주택 거주지의 실내 흡연을 둘러싼 문제가 끊이지 않는 가운데 흡연자들의 적반하장식 입장문이 공개되면서 입주민간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26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어느 아파트 협조문'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공개된 사진에 따르면 협조문을 작성한 주민 A씨는 "저는 저희 집 베란다에서 담배를 핀다. 저희 집에서 제가 피는 거니 그쪽이 참으면 되지 않나. 내가 내 집에서 피겠다는데 뭐가 문제냐"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관리소에서 항의전화는 몇 번 받았는데 전 별로 들을 생각이 없다"며 "그러니 앞으로도 담배냄새가 나면 그냥 창문 닫아달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주민들의 층간흡연 피해 호소가 누적된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반성이나 변화의 기미를 찾을 수 없는 이 같은 협조문에 누리꾼들은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공동주택에서의 흡연 문제를 두고 이웃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전문가는 이웃 간 배려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누리꾼들은 "저 집주인 논리라면 층간소음도 괜찮지? 집에서 축구를 하든 농구를 하든 내 집에서 하는 거니까?", "그냥 본인집에서 피우니 본인집 창문닫고 피우세요. 왜 우리집 창문을 닫아야 하는건지", "자기 집에 냄새 베는 건 싫어서 베란다에서 피면서 남의 집은 상관 없다고? 어이없네"등의 격한 반응을 내놨다.
이 같은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지난 6월17일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이와 비슷한 사연이 공개돼 공분이 일었다. 부산의 한 아파트에서 '화장실에서 흡연하지 말아 달라'고 호소하는 협조문에 붙은 쪽지 때문이었다.
화장실 흡연 자제를 요청하는 이 협조문에 "아래층에 개별적으로 부탁할 사안인 듯하다. 베란다 욕실은 어디까지나 개인공간이다. 좀 더 고가의 APT(아파트)로 이사를 가시던가 흡연자들의 흡연 공간을 달리 확보해 달라"는 항의성 쪽지가 붙은 것이다.
이에 "흡연공간 따로 원하면 당신들 말대로 좀 더 좋은 고가의 아파트로 너나 가시던가", "저 사람이네. 그렇게 쪽지 쓰러 나오는 시간에 담배 좀 나가서 피세요"등 누리꾼들의 날선 반응이 나왔다.
국민권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신문고에 접수된 간접흡연 또는 층간 담배 냄새 피해 민원은 2844건으로 전년(2386건)대비 19.2% 증가했다. 여기에 최근 코로나19로 재택근무를 하는 사람이 느는 등 집콕족의 증가로 현실은 더욱 심각한 상황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20대 직장인 정모 씨는 "길거리 흡연은 불편해도 얼른 자리를 피하면 그만인데 실내 흡연은 정말 괴롭다"며 "밥을 먹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어디선가 올라오는 담배 냄새에 창문을 닫으러 가는 일이 많다"고 토로했다.
이러한 간접흡연은 담배냄새가 주는 불쾌감 뿐 아니라 실제 폐암으로 이어지는 위험성도 배제할 수 없어 문제가 심각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동남권원자력의학원이 2010년 개원 후 최근까지 10여 년간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CT)을 통해 폐암 판정을 받은 1551명을 대상으로 흡연과 폐암과의 관련성을 연구한 결과, 69.8%(1082명)가 직접 흡연자, 11.5%(178명)가 간접 흡연자로 나타났다. 폐암 진단을 받은 10명 중 8명은 직·간접 흡연자인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이를 두고 실내 흡연을 처벌하는 법의 실효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다. 20대 대학생 김모 씨는 "집이라는 공간에서 흡연을 하는 행위는 외부와 비교할 수 없는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며 "이에 맞는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누리꾼들 역시 "담배연기로 타인에게 피해줄 경우 범칙금 및 손해배상되도록 법 개정 되어야한다. 여름에는 창문열고 사는데 밑 세대 담배연기로 아이들 힘들어하는 집들 많음", "담배값 인상 이런 거 말고 비흡연자를 위한 강력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행 공동주택관리법상 간접흡연으로 문제가 발생해도 아파트 관리 주체 측이 입주자에게 실내 흡연 중단을 강제하는 것이 아닌 권고하는 것에 그친다.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금연 아파트 또한 무용지물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금연 아파트로 지정된 단지는 금연구역인 복도와 계단, 엘리베이터, 지하주차장에서 흡연을 하다 적발되면 10만원의 이하의 과태료를 물게 된다. 하지만 지정 구역 이외의 공간에서 이뤄지는 흡연은 과태료 대상이 아니다.
한편 금연아파트와 실외 금연구역 지정 증가 등으로 점점 자리를 잃어가는 흡연자들 사이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별도의 흡연 공간은 마련하지 않은 상태에서 담배를 피면 안 된다는 분위기를 조성하거나 제재만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서울 시내 금연구역은 2016년 24만4582곳, 2017년 26만5113곳, 2018년 28만2641곳으로 매년 2만곳씩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반면 흡연 구역은 2019년 1월 기준 6200곳으로 금연구역 대비 2.4%에 불과했다.
이에 일각에선 흡연 부스 등이 거론됐지만 설치 및 운영 부담으로 단지 내 확대 도입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렇다 보니 흡연권을 주장하는 흡연자와 피해를 호소하는 비흡연자 사이의 갈등은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는 관련 규정 보완과 함께 이웃 간 배려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민구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SBS Biz와 인터뷰에서 "흡연에 관한 규정이 있지만, 강제성이 없고 증거 확보가 어려워 현실적으로 실효성이 없다. 법적인 보완이 필요하다"면서도 "결국 이웃 간에는 흡연이나 소음을 서로 조심해서 배려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소영 기자 sozero815@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