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칫하다 뒤통수…공인중개사는 어쩌다 '공공의 적'이 됐나

집값 폭등에 '복비' 둘러싼 갈등 증폭
소비자 "집은 그대로인데 복비는 왜 비싸냐"
억울한 중개인 "규정 요율에 따랐을 뿐인데…"
갈등 방치해온 정부, 뒤늦게 개선안
10억 아파트 중개수수료 900만원→550만

서울 송파구 한 공인중개사 사무실에 시세표가 붙어 있다./강진형 기자aymsdream@

# 전세계약을 마친 A씨는 공인중개사로부터 "중개보수 외에 부가세 10%를 추가로 납부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A씨는 별다른 의심없이 10%를 공인중개사에게 지급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그 공인중개사는 부가세를 면제받는 간이과세자 사업자였다. A씨는 환불을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 B씨는 공인중개사를 통해 아파트를 구매하려고 했으나, 계약조건이 맞지 않아 불발됐다. 공인중개사는 "중개물을 소개하고 알선에 들어가는데 유무형의 비용이 들어갔다"며 수고비 명목으로 수수료를 요구했다.

# C씨는 아파트 매매 최종계약을 앞두고 있었는데, 매도인이 갑자기 특별한 사유없이 계약을 일방 파기했다. 공인중개사는 "계약파기 시에도 양쪽 모두에게서 중개보수를 받는 것이 관행"이라며 중개비를 요구해 어쩔 수 없이 금액을 지급했다.

주택 중개수수료 관련 민원 및 제안이 최근 2년간 국민신문고에만 3370건이 접수되는 등 '복비 갈등'으로 인한 분쟁과 민원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폭등한 집값·전세값에 복비까지 부담

특히 집값·전셋값 급등의 여파로 중개수수료와 관련한 불만이 더욱 커졌다. 중개수수료는 거래 금액에 따라 최고 요율이 다르다. 서울 기준 매매의 경우, 9억원 미만은 0.4~0.6%, 9억원 이상은 0.9%다.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이 5억원 미만일 때는 약 200만원의 중개수수료가 들어갔다. 그런데 문재인정부 들어 중위가격은 9억원을 넘어섰다. 중개수수료는 약 800만원대로 급증하게 됐다.

"집이 달라진 것도 아니고, 중개서비스의 질이 달라진 것도 아닌데 무슨 복비를 이렇게나 받느냐"는 소비자들의 볼멘소리가 터져나온다. 집값 폭등의 박탈감과 스트레스가 공인중개사로 향하고 있는 모양새다.

공인중개사들은 중개수수료에 대한 비난 여론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법에 따라 수수료를 받고 서비스를 행한 것일 뿐인데 '공공의 적'으로 매도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복비의 상승은 규정에 따른 수수료율 때문이지, 자신들이 임의로 더 높여 받거나 부당이득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10일 서울 경찰청 헬기에서 바라본 강남지역 아파트./강진형 기자aymsdream@

◆공인중개사가 진짜 공공의 적?…갈등 방관하고 있는 정부

그러나 이러한 갈등의 배경에는 정부의 방관과 무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위 A씨와 B씨, C씨의 사례에서와 같은 중개업무 부가서비스 관련 갈등은, 대체로 규정의 미비에 따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공인중개사가 간이과세자임을 나중에 확인해도 소비자가 이를 환불받을 수 있는 근거 규정이 없다. 최종 계약파기 시 중개보수 부담과 관련해서도 관련 규정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상시로 갈등이 발생하는 영역이지만 법적 가이드라인이 부재한 셈이다.

지난해 9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한국판 뉴딜정책으로 중개사 없이 부동산 거래하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문재인 대통령님 전상서'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정부가 부동산 정책의 잇단 실패의) 모든 책임을 선량한 공인중개사에게 전가하려 한다"며 "중개사가 집값을 올리고 불법 행위를 하는 듯이 거짓 사실로 여론을 호도했고 급기야는 공공의 적으로 매도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먼저 소비자 피해를 양산하는 불법 탈법 행위부터 정부가 근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청원자는 부동산학회의 자료를 근거로 "2018년 기준 전체 거래량의 60%만 공인중개사가 하고 있고 나머지 151만 건 이상은 당사자 간 직접거래나 무등록업자의 불법거래 또는 컨설팅 거래"라고 했다. 그러면서 "국가는 이들 무등록업자를 소탕하려는 실질적인 노력은 하지 않고 방기한 채, 모든 책임을 선량한 공인중개사에게 전가하고 사회악으로 매도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정부, 뒤늦게 개선안…10억 아파트 중개수수료 900만원→550만원

뒤늦게나마 정부는 부동산 중개수수료를 둘러싼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로 했다. 특히 부동산 중개 수수료가 내려가 집을 사고파는 사람들의 부담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9일 중개 수수료율 개선안을 마련해 국토교통부에 개선하도록 권고했다. 국토부는 이를 참고삼아 늦어도 7월까지는 요율 개편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권익위 권고 유력안 대로 요율이 바뀌면 10억원짜리 아파트 매매 중개 수수료는 현행 최대 900만원에서 550만원으로 줄어든다.

◆ 계약파기시 원인 제공자만 중개보수 지급하기로

이와 함께 권익위는 중개사의 법정 중개서비스 외 부가서비스 제공 범위를 명문화하고, 이를 소비자가 선택해 이용할 수 있도록 별도 수수료 책정 근거 규정도 마련하도록 했다.

실제 거래계약까지 성사되지 못한 경우 중개물의 소개·알선 등에 들어가는 수고비를 받지 못했다는 중개사들의 불만을 해결하기 위해 알선횟수 등을 감안해 실비보상 한도 내에서 중개·알선수수료를 지급하는 근거를 마련하도록 했다.

임대인과 묵시적으로 계약갱신이 이뤄졌으나 임차인이 개인사정으로 갱신계약 만료 전 이사를 가게 되는 경우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새로운 임대차 계약에 대한 중개보수 일체를 전가하는 사례에 대한 민원이 반복되고 있어 이에 대한 근거 규정을 마련하도록 했다.

최종 계약파기의 잘못이 계약 쌍방 중 어느 일방으로 인한 경우 중개 보수를 누가 내야 하는지에 대한 규정이 없는 문제도 해결하도록 했다.

현장에서는 양 당사자 모두에게 중개보수를 받는 것이 관행으로 돼 있으나 권익위는 계약파기 원인 제공자가 중개보수를 모두 부담하게 하는 방안을 마련하도록 했다.

또 전세가 만료돼 재계약을 하거나 새 집주인과 신규계약을 하는 경우 지급 근거와 어느 정도의 중개보수를 지급해야 하는지 정하도록 했다.

김형석 국토부 토지정책관은 "국민들이 느끼는 중개보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실무 논의기구를 구성할 예정인 만큼, 업계의 적극적 참여와 소통을 통해 합리적인 제도개선 방안이 도출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했다.

김동표 기자 letmein@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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