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시네포엠 '초우' 4K 블루레이로 만난다

미학적 실험·선진성으로 청춘 남녀 사랑·배반 진부한 설정 극복
“독보적인 미학적 성취…재평가 기대"

“가슴 속에 스며드는 고독이 몸부림칠 때/갈 길 없는 나그네의 꿈은 사라져 비에 젖어 우네/너무나 사랑했기에 너무나 사랑했기에/마음의 상처 잊을 길 없어 빗소리도 흐느끼네.”

가수 패티김의 대표곡 가운데 하나인 ‘초우’의 도입부다. 정진우 감독이 연출한 영화 ‘초우(1966)’의 주제가로 제작됐다. 신분 상승을 꿈꾸는 청춘의 어긋난 로맨스에 구슬픈 여운을 더한다.

자동차 정비공 철수(신성일)와 프랑스대사관 식모 영희(문희)는 서로 신분을 속인 채 사랑을 속삭인다. 철수는 영희에게 선물하려고 돈을 훔치다 행인들에게 뭇매는 맞는다. 초라한 몰골로 영희에게 다가가 가난을 고백한다. 영희도 자기가 프랑스대사의 딸이 아니라고 털어놓는다. 철수는 배신감에 사로잡혀 울부짖는다. 슬픈 하룻밤을 보내고 그녀 곁을 떠난다.

애절한 로맨스와 주제가로 많은 사랑을 받은 ‘초우’가 한국영상자료원의 4K 디지털 블루레이 복원으로 재조명된다. 한국을 대표하는 ‘시네포엠(cin?-po?me)’ 영화다. ‘네 멋대로 해라(1959)’, ‘사형대의 엘리베이터(1958)’ 같이 시각적 표현으로 시적 감흥을 일으킨다. 정진우 감독은 “이야기와 테마, 대사를 최소화하고 오직 카메라에서 나오는 형식으로 만들고 싶었다”고 회고했다.

미학적 실험과 선진성은 청춘 남녀의 사랑과 배반이라는 진부한 설정을 극복하기에 충분했다. 보기 드문 카메라 워크와 편집으로 인상적인 이미지를 창조했다. 영상자료원 관계자는 “당시 한국영화 주류였던 문예 영화의 문학성에 반하는 작품”이라며 “‘맨발의 청춘(1964)’ 뒤 내리막을 탄 청춘영화의 한계를 극복하며 독보적인 미학적 성취를 이뤘다”고 평했다. “멜로 드라마라는 장르적 특성 때문에 그동안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블루레이 출시를 통해 재평가될 기회를 얻으리라 기대한다”고 했다.

블루레이는 영상자료원이 2017년 4K로 복원한 영상을 기반으로 제작됐다. 오리지널 네거티브 필름의 찢어진 부분을 보수하고, 화면 흔들림과 스크래치를 보정했다. 아울러 음향의 잡음을 제거하며 소리의 균형을 맞췄다. 서플먼트로는 정진우 감독과 김형석 평론가의 영화 해설이 수록됐다. 영상자료원 관계자는 “감독이 또렷하게 기억하는 제작기와 연출 철학이 영화를 보다 풍부하게 이해하도록 도울 것”이라고 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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