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윤주기자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세상에서 가장 큰 배' 프렐류드 FLNG.(출쳐= Shell 유튜브 공식 채널)
[아시아경제 황윤주 기자] "배가 아니다. 기름 나는 섬이다."
생김새는 배와 같지만 실은 자기 힘으로 항해하지 않고 바다 위에 떠 있는 '에너지 플랜트'(FPSO)를 이르는 말이다. FPSO는 한 곳에 20~30년간 머물면서 해저의 원유를 생산하고 하역한다. FPSO가 건조된 후 유전이 있는 장소로 이동할 때도 항해하지 않고 예인선에 끌려간다. 그래서 업계에서는 선박이 아닌 플랜트로 구분한다.
같은 용도지만 원유가 아닌 가스를 생산하는 설비는 LNG-FPSO(FLNG)라고 부른다. 한국 조선업계는 세계에서 발주하는 FLNG를 독점하는 나라 중 하나다. 특히 삼성중공업은 2010년 이후 전 세계에서 발주된 4기의 초대형 FLNG 중 3기를 수주했다. 나머지 1기는 대우조선해양이 수주했다.
현재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는 '모잠비크 코랄 술(Coral Sul) FLNG'를 한창 건조 중이다. 길이 439미터, 폭 65미터, 높이 38.5미터로 자체 중량 21만t 급의 초대형 해양 설비다. 정규 축구장(길이 105미터, 폭 68미터) 4개가 나란히 들어가는 규모다.
삼성중공업이 수행하는 공사 금액만 2조 8534억원(약 25억 달러)에 달한다. 이 어마어마한 플랜트에 들어가는 후판 전량을 이례적으로 단일 철강사가 공급했다. 이례적인 일이다. 조선사는 주로 대형 프로젝트에 들어가는 철강재의 공급사를 다원화하는 전략을 펼친다. 원가 절감도 꾀하고, 공급 안정성 측면에서 더 안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중공업은 이번 프로젝트에 사용하는 후판 전량을 에 주문했다.
가 이번 프로젝트에 후판을 독점 공급한 배경은 특별한 협업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이름하여 'Alliance TFT'. 양사의 프로젝트 유관부서가 정례적으로 교류하면서 서로의 원가를 절감하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으로 구성된 TFT이다.
해양프로젝트에서 중요한 사안 중 하나는 '건조일정단축'이다. 건조 일정이 단축되면 그만큼 조선사의 원가가 절감된다. 그리고 조선사가 납기를 단축하기 위해서는 주요 소재인 철강재를 빨리 받아보는 것이 필수적이다.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세상에서 가장 큰 배'로 불리는 프렐류드 프로젝트 당시 는 삼성중공업에 통상 5개월이 걸리는 강종을 3개월 만에 공급했다. 일반적으로 조선해양용 후판의 주문을 넣을 때 고객이 주문서를 작성해 로 전송하면, 는 주문서에 맞춰 순서대로 강재 생산을 설계한다.
와 삼성중공업은 이 루틴을 과감히 뒤집었다. 우선 정식 주문서를 발주하기 전, 삼성중공업이 필요한 강재의 규격과 사이즈를 로 먼저 보냈다. 는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설계-마케팅-생산 부서가 함께 가장 단기간에 최적의 효율로 생산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을 짰다.
그렇게 만들어진 주문서를 시작으로 주문-설계-생산-출하 프로세스를 가동했더니, 삼성중공업은 초고강도 해양구조용 강재를 종전보다 두 달 빨리 받아보게 됐다. 역시 제품 생산성을 눈에 띄게 높였다. 양쪽의 설계, 생산 방식은 전혀 건드리지 않으면서 삼성중공업의 니즈를 충족시키며 양사가 윈윈(Win-Win)하는 결과를 낳았다. 영리한 협업이었다.
코랄 프로젝트에서도 협업 스킬이 빛을 발했다. 최초 설계 당시 삼성중공업은 LNG 저장탱크의 외벽용으로 극저온용 3.5% 니켈 강재 사용을 검토했다. 그러나 3.5% 니켈강은 원료 수급 변동성과 가격, 긴 생산 기간 때문에 조선사 입장에서는 부담일 수밖에 없는 강재. 새로운 솔루션이 필요했다.
이에 는 기존 니켈강을 극저온용으로 개발된 일반 탄소강종으로 대체하기를 제안했다. 선주를 설득하며 설계를 변경해야 하는 꽤 도전적인 이 시도는, 결국 두 회사의 긴밀한 협업 덕분에 관철됐다. 삼성중공업은 원가와 납기를 모두 줄이며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는 포항제철소에서만 양산하던 이 극저온용강을 광양제철소에서도 양산할 수 있게 됐다. 무엇보다 회사의 WTP(World Top Premium) 제품인 극저온용강의 신수요를 개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황윤주 기자 hyj@asiae.co.kr<ⓒ경제를 보는 눈, 세계를 보는 창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