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벚꽃 엔딩/정창준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잎이,벚꽃잎이, 벚꽃잎이가장 아름다운 순간을가까스로 넘기자마자,분분한 해고의 순간,바람을 핑계로 계약직의 생애가 저문다.나무의 열매를 나눠 가진 적 없는죄 없는 꽃잎들이골목 끝으로 몰려 웅성거리다가무심한 시선에다시 한 번 쓸려 나간다.다시 계약직의 무성한 잎들이 채용되었다.
■그랬구나. 벚꽃잎들이 흩날리던 지난봄 나는 그저 그 아래에서 아무런 생각 없이 탄성만 질렀는데, 시인이여, 당신은 "분분한 해고의 순간"을 보고 있었구나. "죄 없는 꽃잎들이" "골목 끝으로 몰려 웅성거리"고 있었는데도 그런 줄은 꿈에도 모르고 나는 다만 "무심"히 바라만 보고 있었구나. 내년이면 다시 피겠지, 그렇게 한번 "저문" 꽃잎의 "생애"에 대해 실은 안타까워하는 마음 하나 없이 아쉬워하면서. 정녕 부끄럽구나. 그 곱던 꽃잎들이 우수수 지고 난 뒤 "다시" "채용"된 "계약직의 무성한 잎들"이 마련해둔 그늘에 앉아 붉고 검은 버찌들을 헤아리고 있는 내가 정말이지 하염없이 부끄럽구나. 채상우 시인<ⓒ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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