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가드너/안미옥

얼려 놓아야 할 것이 많은데냉동실이 꽉 차 있다방 안에서 우두커니혼자 돌아가는 냉장고 소리를듣고 있다냉장고 안엔죽은 것들만 들어 있다검은 봉지에 담겨오랫동안 얼어 있었던 것가장 낮은 칸엔가장 무거운 것이 들어 있다
■시에 적힌 그대로 "냉장고 안엔" 특히 냉동실엔 "죽은 것들만 들어 있다". 그리고 "가장 낮은 칸엔" 대부분 "가장 무거운 것이 들어 있"고. 시인은 이처럼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하는, 그래서 무심코 지나치는 어떤 사실들만을 적고 있다. 그런데도 묘하게 시적이다. 왜 그럴까? 내가 생각하기에 그 까닭은 아직 해명되지 않은 어떤 발견의 장소로 우리를 초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밤하늘에 빛나는 저 수많은 별들 가운데 몇몇을 짚어 '무슨 동물처럼 생기지 않았니', '그게 뭘까'라고 맨 처음 물었던 사람이 그랬듯 말이다. 그 사람이 넌지시 던진 질문을 따라 우리는 이런저런 상상을 하기 시작했고 의견을 나누었고 이름을 붙였고 이야기를 지었고 보태 왔던바 별자리가 생겼고 신화가 탄생했고 우리 자신의 심연을 구성했다. 이 시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얼려 놓아야 할 것" 그리고 "검은 봉지에 담겨" "오랫동안 얼어 있었던 것"은 대체 무얼까? 친절하게도 시인은 '가드너'라는 제목을 붙여 두었다. 우리가 애써 꾸미고 있는 꽃밭은, 혹은 추억은, 실은 "죽은 것들만" 가득한 곳이 아닐까? 채상우 시인<ⓒ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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