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김경후/등이 되는 밤

  너의 등에서 얼어붙은 창문 냄새가 났을 때 나는 너의 등이 되었지 네가 뒤돌아보지 않는 등 불 꺼진 가로등 그칠까 눈이 그칠까?  너의 등에서 짓밟힌 눈사람 냄새가 났을 때
 나는 너의 등뼈가 되었지 붉은 네 심장을 감싸는 세상에서 가장 많이 움츠린 등뼈  그건 세상의 모든 음표로 엮은 너와 나의 새장 하지만 새가 없는 새장 눈이 그칠까 눈이?  너의 등 냄새가 나의 내일보다 달콤했을 때 내가 너의 등뼈가 되었을 때 눈앞은 오직 눈만이 흩날리는 밤 다친 짐승의 피입김 피어오르는 동굴 같은 지금 너의 등엔 눈이 그쳤을까  ■그런 사람, 한 사람은 꼭 있다. "눈앞은 오직 눈만이 흩날리는 밤", 내 등이 온통 "얼어붙은 창문"이 되어 버렸을 때 내 등 뒤를 말없이 바라보는 사람, 내 등에서 "짓밟힌 눈사람 냄새가 났을 때" 가만히 내 등을 감싸 안는 사람, 그런 사람. "세상에서 가장 많이 움츠린 등뼈"로 "눈이 그칠까" 그쳐야 하는데 걱정하는 사람, 내가 "뒤돌아보"지 않아도 내 등 뒤에 묵묵히 서 있는 사람, 아무런 희망 없이도 그러는 사람. 그래서 가끔 등이 시린 거다. 내 등 뒤에 나보다 더 추운 곳에서 오로지 나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내 등이 그렇게 가르쳐 주는 거다. 채상우 시인<ⓒ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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