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정민차장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이틀째인 26일(현지시간)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막판까지 경합을 벌였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대선 후보로 선언하기 위해 단상으로 이동하며 대의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이날 민주당은 클린턴을 대선 후보로 정식 지명했다.(사진=EPA연합)
"선거운동을 시작했을 때보다 마쳤을 때 이 나라의 미래를 훨씬 낙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미국 대통령을 꿈꿨던 정치인 버니 샌더스는 '행복한 낙선'을 경험했다. 그의 도전은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누구도 그를 패배자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외롭지 않았다. 수많은 미국인이 함께했다. 특히 사회에 냉소적이었던 20대 젊은이들이 동참했다. 그들의 가슴 속에 '희망의 불덩이'가 되살아나도록 기운을 불어넣은 탓이다. 1941년 미국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75세의 백발노인은 어떻게 젊은이들 사이에서 희망의 아이콘이 될 수 있었을까. ◆미국 대선 후 일주일, 베스트셀러 주인공=2016년 11월15일 미국 최대 온라인 서점 아마존은 이른 아침부터 흥분의 기운으로 넘쳐났다. 베스트셀러 결과가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당시는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당선된 지 일주일이 지난 시점이다. 관례대로라면 신임 미국 대통령 당선자 자서전이 정치 분야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라 샌더스였다. 그의 저서 'Our Revolution : A Future to believe in'은 정치 분야 정상을 넘어 소설, 에세이, 경제·경영 분야의 인기 서적을 모두 제치고 종합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도서출판 원더박스가 출간한 '버니 샌더스, 우리의 혁명'은 그 책의 한글 번역판이다. 버니 샌더스의 정치 철학에 대한 설명과 대선 도전의 과정이 담겼다. 대선 출마를 놓고 장고(長考)를 이어가던 샌더스가 출마 결심을 굳히게 된 배경은 특별했다. 2015년 어느 일요일 아침, 샌더스는 아내와 함께 레스토랑을 찾았다. 그곳의 '블루베리 팬케이크'를 맛보는 것은 삶의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샌더스 앞으로 이름 모를 퇴역군인이 다가왔다. "참전수당을 받게 해줘서 감사하다." 그는 진심으로 고마움을 전했다. 샌더스는 전쟁 반대론자다. 누구보다 진보적인 색채가 강하다. 하지만 퇴역군인 지원에 앞장서는 인물이다. 국가를 위해 전쟁에 나섰다면 퇴역 이후의 삶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소신 때문이다. 퇴역군인은 샌더스에게 대선 출마를 부탁했다. 곁에서 그 얘기를 들던 샌더스 아내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내는 남편이 어떤 선택을 할지 이미 알고 있었다. 그 길이 힘겨운 도전이 될 것이라는 점도 모를 리 없었다.지난해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파란을 일으켰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경선 유세장에서 지지자들에게 각자의 학자금 대출을 크게 외치도록 유도하고 있다. 샌더스 의원은 학자금 대출에 대해 비판해 학생들의 큰 지지를 받았다. 사진=AP연합
◆주류에 도전한 샌더스의 정치 드라마=샌더스는 미국 정가가 주목하는 거물 정치인이 아니었다. 공화당이나 민주당 소속도 아니고 무소속 신분이었다. 샌더스는 1981년 버몬트 주 벌링턴 시장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된 후 시장을 네 번 연임했다. 이후 미국 연방 하원의원 8선을 연임하고 재선 상원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10년 미국 상원 본회의장에서 진행된 필리버스터를 통해 전국적인 지명도를 쌓았다. 당시 샌더스는 부자 감세를 반대하는 주장을 펼치고자 8시간27분에 걸쳐 필리버스터를 벌였다. 하지만 샌더스의 인지도는 다른 대선후보와 비교할 수준이 아니었다. 지역의 무소속 상원의원에게 관심을 두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2014년 미국의 전국 단위 여론조사에서 샌더스 지지율은 1%에 불과했다. 2015년 4월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뛰어든 것은 무모한 도전과 다를 바 없었다. 실제로 샌더스는 대선을 치를 만한 정치자금도 정치조직도 없었다. 반면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은 너무 큰 산이었다. 힐러리는 폭넓은 국정경험을 쌓았고, 정가를 비롯해 주류 사회가 힘을 실어주는 정치인이었다. 샌더스가 출마하면 지지하겠다고 약속한 미국의 상·하원 의원, 주지사, 시장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언론 환경도 기울어진 운동장을 벗어나기 어려웠다. 미국 전역의 수많은 언론사는 힐러리를 지지했다. 샌더스를 지지한 언론은 '시애틀 타임스'가 유일했다. 주류의 시선으로 볼 때 샌더스의 도전은 실패를 피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샌더스는 자신이 있었다. 벌링턴 시장 시절부터 풀뿌리 민주주의를 실천했던 경험이 있다. 샌더스는 삶의 스토리가 있는 정치인이다. 분명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 능력은 정치인으로서 큰 장점이다. 샌더스는 중산층과 빈곤 계층, 노동자 계층과 소수자를 대변했다. 샌더스는 사형제에 반대하고 공립대학 무상교육을 주장한다. 보편적인 의료복지 서비스 확보를 주장하고 미국 정부의 부자 감세 움직임을 맹렬히 비판한다. 미국 주류 사회는 그의 등장을 달갑지 않게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