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한 詩]책방에서 빗소리를 들었다/김은지

  내 마음은 비 오는 날을 위해 만들어졌다  난 내일 필 거야 그건 벚꽃의 계획  그러나 가지마다 다랑다랑 빗방울 꽃 피는 것을  몰랐다 이렇게 예쁜데 왜 비 오는 날마다 보러 나오지 않은 거지  나는 너무 내 마음을 몰랐다  비가 와서 산에 안 가고 서점엘 갔다 그래서 비가 온 것이 그렇게 좋았다  지붕을 내려다본다 지붕은 비 오는 날을 위해 뾰족한 모양을 하고 있다  내 마음은 비 오는 날을 위해 만들어졌다
■나도 중고등학교와 대학교 다닐 때 비 오는 날이면 문득 서점엘 가고는 했더랬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삼십 년 저편의 동네마다엔 크고 작은 서점들과 헌책방들이 멀찍이서 서로를 건너다보고는 했었다. 그 시절 특히 비 오는 날 서점에 자주 갔던 까닭은 책 냄새 때문이었다. 활자들 사이로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신선한 종이와 잉크 냄새들 말이다. 그리고 뽀득뽀득거리는 표지를 만지는 기분도 무척 좋았고. 지금은 다 어디로 사라졌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삼중당문고, 마당문고, 학원문고, 을유사판 세계문학전집. 그 책들을 한두 권 사서 비 오는 내내 뒹굴뒹굴 읽었던 그때가 참 그립다. 채상우 시인<ⓒ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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