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여담]섭리(攝理)

[아시아경제 임철영 기자]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 만나는 사람은 반드시 헤어지고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는 불교의 경전 중 하나인 법화경(法華經)에 나오는 문구다. 회자정리만 읽으면 덧없음을 느끼지만 거자필반에 이르면 원천을 알 수 없는 희망에 위안을 삼는다. 고맙고 아끼는 사람과의 헤어짐의 슬픔을 덮기 위한 경전의 말씀일 수도 있겠지만 중생들의 삶에선 최소한 그렇게 읽힌다.  질곡의 시간을 함께한 사람과의 헤어짐 뒤엔 깊은 여운이 남는다. 함께 있을 때는 몰랐던 관계의 깊이는 변화의 순간에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만든 헤어짐이라 치더라도 기억의 수많은 편린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냉정하기 어려운 게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때론 그 반대의 상황도 있는 법. 경전의 말씀을 '섭리'로 받아 들일만 하지만 화두를 바꾸면 법화경의 문구를 부정하고 싶은 불경한(?) 욕구가 들어 찰 때가 있다. 자주 분출하는 욕구는 아니지만, 회자정리 덕에 겨우 쓸어낸 걱정과 분노가 거자필반 탓에 다시 찾아드는 경우가 그렇다. 대한민국을 강타했고 현재도 진행 중인 '국정농단' 사태와 생떼 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의 고통을 외면한 채 3년 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세월호 인양을 미뤄온 당사자들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수많은 죄 중 가장 나쁜 죄는 많은 사람에게 해를 끼치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죄다. 부끄러움이 없으면 반성이 없고 반성이 없으면 재발하기 마련이다.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해악도 문제지만 잠재된 해악이 더 하다는 얘기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당부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죄 앞에서는 힘을 잃는다. 완전한 결별 밖에는 답이 없다. 백번 양보해 '이것도 인연'이라 치더라도 다시는 만나지 않는 편이 낫다. 이렇게 보면 경전의 말씀은 대상과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해야 할 듯하다. 5월9일 19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에서 뽑은 대선주자들이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과거 여당 대선주자를 제외하고 대부분은 수개월 목도한 '불의'와 결별하고 보다 나은 국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일부 야당 대선주자들의 행보에서 적폐를 답습하는 모습을 목격하지만 대부분(?) 제 몫을 다하지 않고 떠난 존재와 결별하기 위해 다짐하고 노력하는 모습은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다. 떠나보냈던 '상식'과 '정상'을 찾는 과정이니 당연하다. 오래전에 잃어버렸거나 떠나보낸 듯, 한켠에 묻어뒀던 '정상'과 '상식'에 대한 희망. 그 희망에 경전의 섭리가 작동한다면, 이젠 잃었던 것을 찾고 복원력을 회복할 때가 됐다. 국정농단의 주범과 종범은 하나둘 구속되고 있다. 그리고 세월호는 1089일만에 뭍으로 돌아왔다.임철영 기자 cylim@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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