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무장관에 “저녁 먹자” 말도 못하는 한국외교

틸러슨 국무장관 동아시아 순방에서 드러난 한국외교 실력사드 관련 듣고 싶은 말 못 듣고 일본, 중국에서 만찬하면서 한국에서는 안 해일본은 '동맹국', 한국은 '파트너'
[아시아경제 황진영 기자] 4박5일간의 한-중-일 순방을 마치고 19일 미국으로 돌아간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질서에 일대 격랑이 휘몰아 칠 수도 있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한국 외교 역량이 그 어느 때 보다 중요한 시점이지만 틸러슨의 4박5일 순방 기간 중에 드러난 한국 외교 실력은 낙제점 수준이다. 틸러슨은 사드와 관련해 우리가 원하는 이야기를 중국에서 공개적으로 거론하지 않았고,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 허용에 대해서는 한국에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다가 한국을 떠나면서 미국 언론에 밝혔으며, 일본과의 관계를 설명하면서 언급한 ‘가장 중요한 동맹국’이라는 표현을 한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사용하지 않았다. ◆중국에 사드 관련 문제 제기 안 해 틸러슨 장관은 18일 베이징에서 왕이 중국 외교부 장관과 회담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반도 사드 배치와 관련된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틸러슨 장관은 서울에서는 한국에 대한 중국의 사드 보복에 대해 문제제기를 할 것이라고 했지만, 막상 베이징에 가서는 공개 석상에서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은 것이다. 틸러슨 장관은 17일 윤병세 장관과의 외무장관 회담에 앞서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사드와 관련된 중국의 행동은 불필요하고 굉장히 유감스럽다"면서 “우리는 중국이 이러한 행동을 자제할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비공개 회담에서 사드 문제를 논의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외교가의 한 소식통은 “사드 문제가 공개적으로 거론될 경우 미-중 갈등으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에 비공개 회담에서는 논의를 하고 기자 회견에서는 거론하지 않기로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사드가 미국의 필요에 의해서 한반도에 배치된 측면이 있는 만큼 미국이 좀 더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서기를 바랐던 우리 외교부의 기대에 못 미친 것은 사실이다. ◆일본은 ‘동맹국’, 한국은 ‘파트너’ 일본과 한국을 차례로 방문한 틸러슨 장관이 일본에 비해 한국을 홀대한 게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틸러슨 장관이 일본에서는 외교 수장과 만찬을 한 반면 윤 장관과는 만찬을 하지 않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홀대 논란이 불거졌다. 틸러슨 장관은 만찬 제안을 거절했다는 일부 국내 언론의 보도에 대해 인디펜던트저널리뷰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우리를 초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그들(한국)의 입장에서 (미 국무장관과 만찬을 하지 않은 게) 대중에게 좋게 보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내가 ‘피곤해서 만찬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이 거짓말을 한 것이냐는 질문에 “그냥 그렇게 설명했다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어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는 초청국(한국)이 설명한다”고 말했다. 논란이 이어지자 한국 외교부에서는 19일 “만찬 일정과 관련해서 의사 소통의 혼선이 있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24시간 정도 한국에 머무는 틸러슨 장관의 일정이 빡빡해 한국 외교부에서 배려한답시고 만찬을 안 잡았을 수 있다”면서 “미국 앞에서는 당연히 요구할 것도 요구하지 못하고 알아서 기는 한국 외교부의 저자세 외교가 빚은 해프닝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틸러슨 장관은 인터뷰에서 일본에 대해서는 '가장 중요한 동맹국'이라고 표현했지만, 한국에 대해서는 '하나의 중요한 파트너'라고 말해 두 나라를 보는 시각이 다른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에 있을 때는 일언반구 없었던 ‘한일 핵무장’ 틸러슨 장관은 18일 “북핵은 임박한 위협(imminent threat)이기 때문에 (북핵) 상황 전개에 따라서 미국은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 허용을 고려해야 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틸러슨 장관은 이날 한국 방문을 마친 뒤 중국으로 이동하는 전용기 안에서 동승한 인디펜던트저널리뷰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우리의 정책 목표는 한반도 비핵화이지만 우리가 (한반도 주변의)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다”면서 이 같이 말했다. 틸러슨 장관이 한국에 머무를 때는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던, 한반도와 관련된 정책 방향을 한국을 떠나면서 미국 기자에게 밝힌 것이다. 틸러슨 장관이 윤 장관과의 회견에서 이 문제에 대해 언급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한국을 떠나면서 밝혔다는 점에서 한일 핵무장 카드는 한국 정부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미국이 필요한 경우에 꺼내들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핵 무장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오랜 염원이라는 점에서 아베 총리를 향한 ‘립서비스’라는 분석도 있다. 어떻게 해석하든 미국의 대외 정책에 있어서 한국은 변수가 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황진영 기자 young@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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