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의학칼럼] '세습 권력'이 위험한 이유

황세희 국립의료원 공공보건연구소 실장

지난 일요일(12일) 아침, 북한은 또다시 고체 연료를 사용하는 신형 중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핵보유국 의지를 드러냈다. 그간 국제 사회는 북한에 대해 지속적으로 핵무기 개발을 비난했고 대북 압박도 가했다. 하지만 북한 정권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반도에 핵전쟁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주역은 백두혈통 덕분에 북한의 최고 권력자가 된 3세대 ‘세습’ 정치인 김정은 위원장이다. 그에게는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터전으로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이어온 배달민족의 안위나 미래는 안중에도 없어 보인다. 또 1인당 국민소득(GNI)이 139만원에 불과한 북한 사회 대다수 주민들의 비참한 삶도 관심사가 아닌 듯하다. 실제 북한은 경제 규모가 대한민국에 비해 국민총소득(GNI)은 45분의 1, 무역액은 154분의 1에 불과한 최빈국이다. 그런데도 ‘김정은 집권 5년 실정 백서’에 의하면 김 위원장은 지난 5년간 핵 미사일 도발에만 3억달러(약3500억원)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퍼부었다. 그가 이처럼 핵무기 개발에 집착을 보이는 이유는 아버지로부터 ‘무상(無償)’으로 물려받은 절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만일 북한의 최고 권력자가 세습에 의해서 정해지지 않았다면, 예컨대 중국처럼 공산당 전당대회를 통해 선발된 인물이었다면, 지금처럼 조국과 민족의 명운을 담보로 핵무기 도박판을 벌이지는 않았을 것 같다. 권좌에 오르기까지 지난한 과정을 거치다 보면 소중하게 지켜내야 할 수많은 사회적 자산을 인지하게 돼 무모한 행위는 삼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역사에 가정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지금 북한은 핵무기를 유난히도 좋아하는 33세 세습 정치인이 장악하고 있다.

세습 권력의 부작용은 북한에만 있는 현상이 아니다. 한강의 기적을 이루며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발전한 대한민국도 부와 권력을 세습하기 위해 부당한 방법을 동원하는 일이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다. 우선 작년 12월 9일,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최순실 게이트만 보더라도 핵심 사건 중 하나가 재벌 3세의 경영권 세습을 공고히 하기 위해 대통령이 모종의 역할을 했다는 의혹이다. 대통령 역시 18년간 이 나라를 통치한 아버지의 정치적 유산 덕분에 최고 권력자가 된 대한민국판 세습 정치인이다. 부모의 재산이나 직업 등을 물려받는 세습 자체는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하지만 사회 구성원들이 공평하게 공유해야 할 공적 이권이 불공정 거래에 의해 세습되는 일은 선진 대한민국의 발목을 잡는 적폐다. 대통령의 뇌물죄 적용 여부가 헌재의 심판을 기다리는 이번 사건만 해도 삼성 후계자의 이익을 위해 국민연금은 약 6000억원의 손해를 봤으며 공정거래위원회는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면서 불공정 거래를 부추겼다고 한다. 이런 편법이 과거에도 얼마나 반복해서 활용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8조원 자산가로 알려진 이재용 부회장이 납부한 증여세는 부모로부터 60억원의 종자돈을 받을 때 낸 16억원이 전부라고 한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이다.우리 사회 상류층을 형성하는 부모들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녀에게 부와 이권을 세습시키려는 행태를 보이자 이를 비난하던 사람들도 차츰 그들을 따라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대기업 단체 협약에는 노조원 자녀를 우선적으로 특별 채용하는 고용세습 조항이 있는 곳이 많고, 종교계조차 담임목사직을 세습하거나 교회의 물적 재산을 자녀에게 대물림 하는 일이 비일비재 하다. 권력과 이익이 부당하게 세습되는 일이 일반화 될 때 발생하는 가장 큰 문제점은 ‘수저 계급론’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수많은 청년들이 좌절과 분노심을 느끼게 된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사회는 불안정해지고 긴장과 스트레스 지수는 높아져 개개인의 삶의 질은 현저하게 떨어진다. 공적인 영역에 속하는 권력이나 이권에 관한 한 아무리 작아 보여도 개인이 유용하거나 세습하지 못하도록 제도적으로 원천 봉쇄해야 하는 이유다. 개인적인 측면에서도 건전한 경쟁 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세습 권력을 차지한 사람은 타인에 대한 이해심과 남의 말을 경청하는 훈련이 부족해 불완전한 인격자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금수저 이면에 내재된 어두운 측면인 셈이다. ‘자녀에게 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라’ 진정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라면 재산과 이권을 자녀에게 물려줄 계획을 세우기 전에 자녀 교육 잘 시키기로 유명한 유대인들이 던지는 이 명언부터 되새겨 봐야 할 것 같다. 황세희 국립의료원 공공보건연구소 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