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카페를 운영하였을 때 어느 방송국에서 촬영을 온 적이 있었다. 일주일 마다 메뉴가 바뀌는 카페라 메뉴라고는 딸랑 하나 밖에 없으니 재미있는 방송을 만들기가 쉽지 않다고 판단한 방송팀이 그날 방송의 출연자들과 어울리는 메뉴들을 구성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어떤 메뉴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제철 재료를 잘 활용하면서도 출연자들의 이미지와도 어울리는 메뉴들로 구성을 했다. 스무살의 여성 아이돌 가수와 30대 후반의 연륜이 있는 방송인에게 각각의 다른 메뉴들을 구성하여 플레이트를 완성하였다. 메뉴 선정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를 했다. 아이돌 가수는 파릇파릇한 새싹과 같으니 무엇이든 열심히 하라는 뜻으로 밥상도 힘차게 차렸고 연륜 있는 방송인은 여유있게 방송도 즐기면서 건강하면 좋겠다는 의미로 제철 재료를 충분히 활용했다고 하였다. 그날의 메뉴 중에 재미있는 사건이 됐던 것은 바로 ‘전’이었다. 아이돌 가수에게는 녹색의 애호박전을 동그랗게 부쳐 주고 연륜 있는 방송인에게는 노란 늙은 호박전 채썰어 부쳐 주었다. 그때가 겨울이라 애호박은 마트에서 하나 사서 잘라 밀가루, 달걀물을 입혀 쉽게 부쳤지만 늙은 호박전은 집에서 키운 잘 생긴 녀석을 골라 큰 결심으로 흥부가 박을 타는 마음으로 호박이 잘 익었기를 바라며 잘라 껍질을 벗기고 곱게 채썰어 밀가루를 섞어 모양이 흩어지지 않도록 부치기에 정성을 다하였다. 그날의 늙은 호박전은 정말 특별한 것이었다. 연륜 있는 방송인은 나이 들어서 주름도 생기고 젊고 예쁜 아이돌 가수들 보면서 점점 위축되어 가는데 밥상에서 마저 아이돌 가수에게는 애호박전을, 본인의 밥상에는 대놓고 늙은 호박전을 올려주니 늙은 호박전은 먹지 안하겠다고 해서 많은 웃음을 주었지만 늙은 호박전 탓에 그날 연륜 있는 방송인은 최하의 점수를 주었다. 이쁘고 어리고 싱싱해야만 대접받는 채소계에서 못생기고 늙어도 대접받는 독보적인 존재가 바로 늙은 호박이다. 늙은 호박은 소화 흡수가 잘 되어 소화력이 떨어지는 환자나 노인식으로도 좋고 이뇨작용으로 붓기를 빼주는 역할도 한다. 겨울철에는 늙은 호박에 함유된 노란색은 카로틴 성분은 체내에서 비타민 A로 변해 비타민이 부족하기 쉬운 겨울철에 영양공급원이 된다.
호박범벅
가을에 수확한 누렇게 익은 늙은 호박은 집안을 가득 메우고 있어 보고만 있어도 부자가 된 것 같다. 겨울이 되면 늙은 호박은 하나둘씩 자리를 비운다. 윤기가 흐르고 하얀 분이 많이 묻어 있으며 골이 깊게 파이고 꼭지가 움푹 들어간 잘 생긴 녀석은 선택되어 놀러 오는 지인들에게 선물로 한덩씩 들려 보낸다. 겉이 멀쩡하다고 방심하고 있다가 완전히 썩어 버리는 일도 있으니 수시로 살펴보아야 한다. 늙은 호박은 관상용이 아니니 맛있는 요리로 만들어 질 때 가장 빛이 나고 풍요로움도 더해 준다. 푹 삶은 호박에 팥, 콩, 밤, 대추를 넣어 푹 끓인 후 찹쌀가루로 농도를 맞춘 호박범벅은 겨울철 보양식이 되고 곱게 채썰어 소금을 약간 넣고 밀가루를 넣어 반죽하여 얇게 전을 부치면 설탕을 넣지 않아도 달콤한 전이 된다. 얇게 썰어 겨울바람에 말린 호박고지는 단맛이 증가하여 떡이나 죽에서 특별한 재료가 된다. 무나 감자대신 호박을 생선조림이나 국에 넣어도 시원한 맛을 내고 조림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글=요리연구가 이미경 (//blog.naver.com/poutian), 사진=네츄르먼트 제공 <ⓒ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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