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던 스타킹 수집합니다?... 동네 전봇대 '괴박스'의 정체는

일상 속의 '합리적 의심' - 공예 전문가들은 '이런 방식의 소재 수거는 하지 않는다'는데

SNS에 게시된 스타킹 수거 박스. 사진=트위터 캡처

최근 SNS에 '상당히' 수상쩍은 사진이 돌아다닌다. 동네 전봇대에 초록색 투명 아크릴 상자를 걸어놓고 ‘스타킹 버리는 곳’이라는 안내문을 떡하니 붙여놓은 사진이다. 안내문에는 ‘스타킹은 아시다시피 재활용도 되지 않는다"며 "버려주시는 스타킹들은 깨끗이 세탁해서 머리띠나 머리핀에 장식으로 쓰입니다"라는 긴 설명이 곁들여진다. 언뜻 보면 흔한 재활용 폐기물품 수집 글 같지만 네티즌은 스타킹 마니아의 꼼수가 아닐까 의심한다. 그래서 알아봤다. 공예 하는 분들, 정말 못 쓰는 스타킹을 모으시나요?결론적으로 사진 속 스타킹 수거박스를 만든 공예가를 찾는 데에는 실패했다. 대신 공예 전문가들에게 물어본 결과는 "전혀 아니올시다"였다. 사단법인 스타킹 공예협회의 김현정 협회장은 “협회 측에 소속된 공예가들이 길거리 수거함, 인터넷 게시물 등을 통해 입던 스타킹을 구하는 경우는 절대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스타킹 공예는 올이 나가는 등 하자로 인해 판매하지 못하는 스타킹을 공장에서 가져와 재료로 사용한다. 상품성이 없어 판매되지 못했을 뿐, 완전히 새 제품이라는 뜻이다.

스타킹 공예협회에서 제작한 작품들. 사진=협회 홈페이지 캡처

김 협회장은 “헌 스타킹을 받아 염색을 하고 공예에 활용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기술이다. 할 수 있는 공예가도 많이 없다”고 밝혔다. 협회는 ‘스타킹을 이용한 공예품 제조방법’을 특허로 등록하기까지 했다. 게다가 인터넷에선 공예용 스타킹 5개 한 묶음을 4200원에 판다. 머리띠나 머리핀 장식을 만들기 위해 굳이 헌 스타킹을 모아 세탁해서 쓰는 행위는 상식적으로 설득력이 부족해 보인다.그렇다면 왜 버려진 스타킹을 모으려고 했을까? 스타킹 페티시즘을 가진 사람의 소행일 수 있다는 의심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만, 현재로선 당사자의 신원을 확인하기 어려운 상태다.비슷한 사례가 있기는 하다. 지난해 한 중고거래 커뮤니티에서 ‘스타킹공예품’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이용자가 무려 70개 이상의 '꾸준글'을 올린 것. 게시글 대부분이 ‘인형 공예용 버리는 헌 스타킹 사요’, ‘스타킹 공예용 헌 스타킹 삽니다’등의 제목을 달고 있다.글쓴이는 "인형 하나를 만드는데 스타킹 약 5개가 사용된다. 택배비는 저희가 부담한다"며 "세탁은 따로 안 해주셔도 무방하다. 공예 완료 후 따로 모아 세탁을 돌리는 게 더 편하다"고 설명했다. 헌 스타킹을 개당 약 300원에 사겠다며 샘플 인형 사진도 곁들였다. 하지만 사진 속 샘플 인형은 일반적인 스타킹 공예와 거리가 먼 평범한 봉제 인형으로 보인다. 물론 이렇듯 '소심한' 수집가들만 있는 건 아니다. 인터넷에선 여성이 입었던 스타킹, 속옷을 돈 주고 사겠다는 게시물이 하루가 멀다 하고 올라온다.

공예용 폐스타킹을 산다는 게시물에 첨부된 인형사진과 관련 게시물. 사진=온라인 캡처

법률 전문가는 현행법상 입던 속옷을 합의 하에 사고파는 행위 자체를 처벌할 규정이 없다고 밝힌다. 형법상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확히 구분되기 힘들기 때문이다.'정크아트'의 창시자인 미국화가 로버트 라우센버그는 도시환경에서 파생되는 모든 폐품을 소재로 한 회화를 그렸다. 스팸햄으로 조각작품을 만드는 경연대회도 있다. 소재와 발상의 제한은 예술 세계에 없다. 당장 구글 검색만 해봐도 스타킹으로 만든 걸출한 조형작품이 쏟아진다. 국내에서도 이런 숨은 예술가가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 하나가 있다. 목적을 속인 채 상대방의 물건을 수거해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은 분명 불쾌감을 줄 수 있는 행동이라는 사실이다.

스타킹 조형 예술가 로자 벨룹의 작품. 이미지 출처 = 뷰티풀디케이닷컴

SNS에 올라온 '천재 고등학생의 야동 수집법'. 폐스타킹 수집 목적도 이런게 아니길 바랍니다. 이미지 출처 = yaksha 블로그

이은혜 인턴기자 leh92@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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