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최순실의 방패, 유영하와 이경재의 인물학

김희윤의 '팩트 채굴' - 국정농단 두 '공범'을 지키는 두 변호사가 걸어온 길과 지금

대통령의 방탄조끼라 불리는 유영하 변호사와 비선실세 최순실과 정유라 모녀의 변호를 맡은 이경재 변호사는 의뢰인들을 향해 쏟아지는 국민적 분노 만큼이나 변호인의 입장에서도 중압감을 느낀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어제(22일) 최순실 특검법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됨에 따라 이들은 치열한 전장에 나선 방패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상황이다. 일러스트 = 오성수 작가

[아시아경제 김희윤 작가] 사람들이 서로 대화를 하며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아는 무엇을 말하는 것보다 무엇을 말하는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 세네카대통령의 손을 잡은 사람과 그 손을 뿌리친 사람의 극단적 대비가 화제다. 증명할 수 있는 개인의 능력을 상회하는 무소불위의 권력 앞에 누구는 회사를 빼앗길 뻔하고, 출전권 포기를 종용당했는가 하면, 영문도 모른 채 학교입시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사건의 면면이 모조리 한 사람만 바라보고 있는데, 당사자는 눈을 감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상황. 기꺼이 그녀를 위한 방탄조끼를 자처한 변호인과 그 뒤에서 국정을 농단한 실세의 변호인은 지켜야 할 것이 너무도 많은 두 여인의 앞에 서서 쏟아지는 비난을 감내하고 있다. 같은 듯 다른 두 사람의 전력엔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까?

2007년 대선 경선 당시 이명박 후보 측의 치명적 약점으로 거론 된 'BBK 의혹' 당사자인 김경준 전 BBK투자자문 대표. 사진 = 연합뉴스

BBK 김경준 기획입국 배후?2007년 대선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후보의 경선대책위원회 법률지원단장으로 활약한 유영하 변호사는 상대인 이명박 후보의 BBK 의혹을 집중 공략해 당사자인 김경준의 기획 입국을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본인이 기획 입국을 제안할 위치는 아니었으나 미국에서 직접 김경준을 두 차례 만난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김경준은 입국 당시 (입국) 제안자가 이혜훈 의원이었다고 주장했으나, 두 사람은 접견한 사실이 없고 유영하 변호사와 미국에서 김경준을 변호한 심인섭 미국 변호사가 함께 접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후보는 무혐의를 받아 박근혜 후보를 누르고 한나라당 대선 후보로 출마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15일 '비선실세' 최순실 씨 국정농단 의혹 사건에 대한 검찰 조사를 앞두고 유영하 변호사(사법연수원 24기)를 변호인으로 선임했다. 사진은 2012년 12월 제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경기도 군포시에서 열린 거리유세에 동행한 유영하 변호사. 사진=연합뉴스

절친 때문에 좌절된 청와대 입성의 꿈이후 당내에서 원외 친박 인사로 분류됐던 그는 이듬해인 2008년 18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 2004년에 이어 재도전에 나섰으나 또 한 번 김부겸 의원에게 패하며 훗날을 기약했고, 2010년엔 박근혜 최고위원의 법률특보로 임명, 2012년 대선에선 박근혜 후보 캠프의 네거티브 대응팀에서 활약하며 핵심 측근으로 자리매김했다. 당시 캠프에서 함께 활동했던 동료 조응천 의원과는 검찰 선후배 관계로 나이가 같아 친분이 돈독했다고 알려졌으나, 조 의원이 박 대통령 당선 후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재직 중이던 2013년, 청와대 법무비서관 후보로 유 변호사가 거론되자 향응접대 징계전력과 평판조회결과 부정적 반응이 많음을 들어 그의 청와대 입성을 좌절시킨 이후 관계가 틀어졌고, 청와대 문건유출 파동 후 야인으로 있던 조 의원의 더불어민주당 입당 소식에는 “조응천이 (청와대) 저격수로 나서면 내가 그의 저격수가 될 것”이라며 비판의 날을 세우기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변호인으로 선임한 유영하 변호사가 지난 15일 오후 서울 서초동 고등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진박’ 역풍 후 인권위 거쳐그는 지난 4.13 총선에서 공천 칼바람이 불어 닥친 와중에 새누리당의 대표적인 표밭으로 분류된 송파을 후보로 단수공천 받으며 ‘진박 중의 진박’ 임을 증명해 보였으나, 김무성 대표의 이른바 옥새파동 이후 당내 무공천 방침에 따라 출마를 포기한 아픔을 겪었다. 그에 앞서 2014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으로 임명된 후엔 2015년 UN에 제출한 인권 현안 보고서에 세월호 참사와 통합진보당 해산 등 정부 비판적 내용을 대거 누락시켜 빈축을 사기도 했다. 그럼에도 과거 2007년 대선 경선 패배 후 박근혜 의원의 곁을 지키며 “사내가 주인을 한 번 모셨으면 끝”이라고 자신에게 한 다짐을 끝까지 지킨 그는 총선 불출마에도 굴하지 않고 의리를 지켜 오늘 대통령을 향한 집중포화를 견디는 ‘방탄조끼’이자 ‘호위무사’로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나가고 있다.

3선 개헌 반대 시위에 나선 대학생 행렬

3선 개헌 반대 기수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은 1969년 대통령직을 연임에 이어 3선이 가능하게 바꿀 개헌작업에 착수했다. 사실상 영구집권을 꿈꾼 박 정권의 계략에 극렬히 반대한 당시 신민당 김영삼 의원은 질산 테러로 암살 위기에 처하기도 했는데, 3선 개헌에 가장 먼저 들고 일어난 것은 대학생들로 서울대 법대생 500여 명이 ‘헌정 수호 학생 총회’를 열고 밤샘 농성에 들어간 직후 반대 열기가 전국 대학으로 확산되며 학생 시위로 번졌고, 그 대오에는 당시 서울대 법대 2학년인 이경재 변호사도 함께였다.

1982년 3월 18일 일어난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은 5.18 민주화운동의 강경진압을 묵인한 미국에 항의하는 의미로 대학생들이 자행한 사건으로 당시 부산지검에 근무하고 있던 이경재 변호사는 검사 신분으로 사건 수사를 담당했다. 사진 = KBS1 TV 인물 현대사 화면 캡쳐

공안검사로 역지사지그는 1969년 7월 2일 서울대 문리대 교문 밖에서 데모 중 동대문경찰서 소속 정보과 형사 2명을 넘어뜨리고 폭행한 혐의로 기소돼 7년 뒤인 1975년 3월 무죄를 선고받았는데, 재판 당시 그는 이미 사법시험에 합격한 상태였고 (14회 사법시험 합격, 사법연수원 4기) 그해 춘천지검 검사를 시작으로 대검찰청 공안3과로 자리를 옮겨 역으로 운동권 학생들을 국가보안법과 집시법으로 구속해 수사하는 위치에 서게 됐다. 1982년 부산지검 근무 당시엔 미문화원 방화사건 수사를 담당했는데 최병국 전 한나라당 의원과 신광옥 전 법무부 차관 등 공안 전문 검사들과 함께 호흡을 맞췄던 이때 피의자 중 허진수, 김화석의 담당 변호인은 노무현 대통령이었고, 사건 담당 판사 중엔 이회창 전 총리가 있었다. 1988년엔 동아일보 해직 기자 출신으로 광주학살진상규명 투쟁위원회를 조직해 전두환 구속수사를 주장한 이부영 전 의원을 구속해 기소한 바 있으며, 이후 서울지검 형사1부장 재직 시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지휘하며 대구지검 1차장 검사로 영전했으나 1999년 검사장 승진인사에서 탈락하자 사표를 내고 법복을 벗고 변호사로 전향했다.

최순실의 변론을 맡은 이경재 변호사가 10월 30일, 서초동 사무실 건물 로비에서 최순실 귀국 설명 기자회견을 가지는 모습.

정윤회, 최순실 이어 정유라까지전 국민적 관심을 모은 국정농단의 주역을 변호하는 일이 녹록지 않겠으나 이 변호사의 발언은 철저히 의뢰인 중심적 사고의 연속이다. 2014년 청와대 문건유출 수사에서 당시 최 씨의 남편이자 비선실세로 주목받은 정윤회의 변호를 맡아 검찰 수사에서 무혐의를 이끌어내며 그녀와 인연을 맺은 이 변호사는 이번 ‘최순실 게이트’ 수사에서도 최 씨 측의 변호를 맡아 그녀의 귀국에 덧붙여 “하루 정도 몸 추스를 여유를 달라”고 요청했는가 하면, 최 씨의 딸 정유라를 향해 쏟아진 국민적 분노에 대해서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정유라가) 세월의 풍파를 견뎌낼 만한 나이 같으면 모르겠는데 이건 아닌 것 같다”며 “우리 사회가 이해할 만한 아량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발언해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으며, 최 씨에 대한 검찰의 공소장에 대해서는 “물증이 아닌 당사자 간 진술이 주를 이룬 소설”이라며 일체의 혐의를 부인하는 입장을 밝혔다.정부가 어제(22일) 경제부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최순실 특검법 공포안을 의결하면서 대통령이 재가한 특검을 통해 대통령 본인이 수사 대상이 되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은 국민들은 지지율 5% 식물 정권을 계속 지켜봐야 하는 천형에 처해있고, 촛불이라는 매개를 통해 매 주말 광화문에서 화살기도를 외치는 염원에도 외면과 방패의 이중막은 단단하기만 하다. 산행 중 호랑이를 마주하곤 일발필살의 신념으로 활을 당겨 명중시키고 나서 보니 큰 돌이었다는 중석몰촉(中石沒鏃)의 고사처럼 민중의 함성은 권력의 심중에 닿을 수 있을까. 특검법이 의결된 어제로부터 창과 방패의 대결을 통해 새로운 역사의 흐름이 쓰여질 전망이다. 김희윤 작가 film4h@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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