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선의 딸 정유라와 황태자 이강석… 충격의 '닮은꼴'

박근혜정부와 이승만정부의 '권력 그림자'…전횡과 일탈의 자취들 비교해보니

제1공화국의 황태자 이강석과 박근혜 정부의 승마공주 정유라의 행보는 권력 실세의 자녀이자 대학 입학과정에서 물의를 빚고 방종한 삶을 살았다는 측면에서 데칼코마니처럼 닮아있다. 일러스트 = 오성수 작가

[아시아경제 김희윤 작가] 권력 2인자로서의 삶엔 빛과 그림자, 두 개의 길이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통치자를 암암리에 돕고 때로는 그를 좌지우지하다가도 어둠속에 숨어 사라지면 그만인 그림자의 길과 공개석상에서 권력자의 곁에 늘 함께하며 멀리 그 자리의 승계를 바라보고 내달리는 빛의 길. 이 극단적 대비에 따라붙은 2세의 실책은 호사가는 물론이고 정적이 노리는 권력의 폐부로 두고두고 깊은 상흔을 남기기 마련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비선실세 최순실의 딸 정유라를 둘러싼 일련의 잡음은 반세기 전 제1공화국 황태자 이강석의 파란만장한 일대기와 똑 닮아있다. 각각 빛과 그림자의 2세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두 사람의 행보는 그 시작과 여정을 통해 어떤 지도를 그려냈을까. 한 가지 분명한 건, 조용한 삶이 될 수도 있었던 이들에게 세인의 관심이 쏟아진 계기는 그 배경을 담보로 순리를 거스른 배리(背理)에서 출발했다는 점이다.

이강석은 아들이 없음을 한탄하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이기붕이 바치는 선물이자, 권력 2인자로서의 입지를 굳히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동했다. 사진 왼쪽부터 이승만 대통령, 프란체스카 여사, 이강석, 이기붕, 박마리아

황태자와 공주님이승만 초대대통령은 프란체스카 여사 사이에 자식을 얻지 못했다. 전처소생의 하나뿐이었던 아들은 미국 체류 당시 병사했고, 후사가 없는 것에 대해 늘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던 그의 심중을 읽은 복심, 비서실장 이기붕이 자신의 장남을 그의 83세 생일에 맞춰 양자로 입적시키면서 제1공화국 전면에 황태자 이강석이 화려하게 등장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당선 후 세간에선 2인자로 동생 박지만을 지목했으나 실상은 달랐다. 오랜 시간 동안 그녀의 지근거리에서 그림자처럼 수족 노릇을 한 ‘비선’ 최순실과 남편 정윤회의 존재는 살아있는 권력에 줄을 대려는 정·재계 인사들 사이에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리고 이들 부부가 40 넘어 얻은 늦둥이 딸, 정유라는 새 정권 출범에 앞서 외부에서 내부로 통하는 중요한 통로이자 창구로 읽혔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 승마 마장마술 단체전에 국가대표로 출전한 정유라(개명 전 정유연)는 동료들의 우수한 성적에 힘입어 금메달을 수상할 수 있었다. 개인점수로 그녀의 성적은 출전자 중 5위였다. 사진 = 연합뉴스

부족한 재능과 입학 특혜이강석을 경무대에 들여보낸 뒤 이기붕은 공식적 2인자로 자리매김하며 그의 자택은 ‘서대문 경무대’라 불렸고, 야심가였던 그의 아내 박마리아는 대한부인회 회장과 이화여대 부총장을 역임하며 남편과 아들의 내조, 외조에 전력을 다하는 한편 아들의 양어머니가 된 프란체스카 여사의 눈과 귀 역할을 하며 남편의 정적을 차례로 모함해 제거해나갔다. 대통령의 아들이 된 이강석의 대학진학을 앞두고 발 빠르게 움직인 서대문 경무대는 서울대학교 법학과에 손을 써 편입학을 관철시켰다. 처음엔 ‘청강생’ 신분으로 허가를 받아냈으나 교수회를 책동한 끝에 편입이 결정되자 이내 학생들의 거센 반발에 휩싸였고, 1957년 4월 9일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재학생 1,400여 명이 학생총회에서 이강석의 편입학 취소를 결의하고 이튿날 동맹휴교에 돌입하기에 이르렀다. 사태가 심각해지고 있음에도 권력의 눈치를 살폈던 교수회는 선뜻 그의 퇴학을 결정할 수 없었고, 급기야는 문교부 장관이 나서 “총장의 재량으로 애국지사(이승만)의 양자를 특별히 편입시킨 것은 하등 잘못이 없다”고 주장했다 여론의 뭇매를 맞자 결국 거센 반발을 이기지 못하고 이강석은 서울대학교를 자퇴했다. 앞서 육군사관학교 16기로 입학 후 한차례 자퇴한 바 있던 그의 서울대학교 입학과정은 이름과 생년월일만 기재한 입학원서 제출 후 시험응시 없이 즉각 2학년 편입을 종용하면서 빚어진 촌극이었다. 정유라는 당초 선화예중에서 성악을 전공하고 있었으나 재능이 없어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리던 중 승마선수 출신 사촌 언니의 권유로 승마에 주력하게 된다. 4살 때부터 말은 타왔던 터라 낯설지 않은 분야였고, 해당종목 경쟁자가 많지 않은 점 또한 전공 선회에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녀는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마장마술에서 단체전 금메달을 수상했고 이를 근거로 대입문제를 손쉽게 해결하려다 논란에 휩싸였다. 이화여대는 개교 이래 승마특기생을 입시에서 선발한 바 없었으나, 그녀가 원서를 제출한 2015학년도 수시 전형에 이례적으로 승마특기생이 신설, 합격할 수 있었다. 입시요강에 명기된 ‘원서접수 마감일 기준 최근 3년 이내 국제 또는 전국 규모의 대회에서 개인종목 3위 이내 입상자’ 항목은 2013년 마사회컵 전국승마대회 3위 성적으로 충족시켰으나 합격권으로 보기 힘들었고, 이후 그녀가 수상한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은 ‘단체전’이라 해당 사항이 없었으며(아울러 대회 당시 그녀의 성적은 69.686으로 참가자 32명 중 5위였으나, 팀 동료들이 거둔 높은 성적으로 단체전에서 우승), 금메달 수상은 입시접수 이후였으므로 그녀의 수상경력은 합격 기준에 여러모로 미치지 못하는 조건이었으나 교수회 협의 후 무사히 입학에 성공했다.

주변에서 이강석과 닮았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된 강성병은 그의 평소 오만한 행적에 대해 알아본 뒤 실제 지방에 내려가 똑같이 가짜 황태자 행세를 해 엄청난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다. 그는 재판에 회부되자 변론에서 "헐리우드 였다면 막대한 출연료를 받았을 것"이라 큰소리 쳤는데, 사회 상류층의 방탕한 행적과 거기에 굴종하는 무리의 행태에 분노하던 국민들은 이런 그의 태도를 반겼다. 사진 = 왼쪽 가짜 이강석 강성병, 오른쪽 이강석

전횡과 오만 이승만 정권 당시 황태자의 전횡이 얼마나 극심했던지 이강석과 비슷한 외모의 청년이 등장해 그를 사칭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고교졸업 후 무직자로 전전하던 강성병은 주위에서 이강석과 닮았다는 말에 착안, 평소 이강석의 행적에 대한 풍문을 참고해 경주경찰서에 방문해 “아버지의 밀명을 받고 수행상황을 살피러 왔다”고 발언했는데, 곧장 이 일대 지역유지들이 융숭한 대접과 함께 경호를 자처하며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 한 번의 성공에 자신감이 붙은 그가 일대 지역을 돌며 이강석 사칭을 계속하다 실제 이강석과 안면이 있던 도지사 이근직에 의해 발각, 구속된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며 사회적 파장과 함께 이강석에게는 ‘귀하신 몸’이라는 비아냥 섞인 조롱이 이어졌다.

그의 미국 유학과 귀국소식은 그해 영상뉴스로 기록될 만큼 권력 2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지대했다.

두 번의 연이은 자퇴에도 이강석은 좀처럼 학업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남산에 자리 잡은 방송국을 드나들며 당대 유명 아나운서, 방송인들과 어울리고 밤에는 유흥을 즐기며 방탕한 생활을 이어가다 경무대의 조치로 육군보병학교 141기 간부후보생으로 입학해 훈련 후 1959년 소위로 임관, 미국 포트 베닝 보병학교로 유학길에 올랐다. 그의 출국과 입국이 영상뉴스로 남아있을 정도로 당시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황태자로서 세간의 관심 대상이었다. 정유라는 특혜로 입학한 이화여대에서 수업에 얼굴 한 번 제대로 비추지 않아 물의를 빚었다. 그녀가 수강한 수업의 교수는 한 번도 출석하지 않은 그녀에게 제적 경고를 위해 전화를 걸었다 득달같이 쫓아온 어머니 최순실로부터 모욕을 당했는가 하면, 이후 학교 측이 개정한 학칙에 따라 그녀는 조악한 수준의 리포트를 제출하고도 출석과 시험을 대체해 성적을 챙겼다. 일례로 그녀가 2016년 계절학기에 수강한 의류산업학과의 수업에선 중국 학교와 교류프로젝트로 중국 현지에서 패션쇼를 진행해야 했음에도 교수와 함께 비즈니스 클래스를 이용해 현지 도착 후 ‘배가 아파’ 최종 과제인 패션쇼에 불참했고. 다만 준비과정에 ‘참관’했다는 사유로 B 학점을 받아 같은 수업 수강 학생들의 공분을 샀다.

정유라가 2014년 12월 3일 자신의 SNS에 남긴 글. "능력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돈도 실력이야" 등 다소 직설적인 표현으로 자신에 대한 오해와 의혹에 반박하는 글을 남겼다. 사진 = 정유라 페이스북

잘못은 정유라가 했지만 이를 지적했던 교수는 소리소문 없이 미국으로 떠났고, 그를 감싸고 좋은 학점을 준 교수는 3건의 정부 지원 연구 프로젝트를 맡아 주도했다. 학생들의 거센 비난에 휩싸인 최경희 총장은 결국 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끝까지 정유라에 대한 의혹에 대해서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다소 시간차가 있으나 그녀는 과거 2014년 12월 3일 자신의 SNS를 통해 “돈도 실력이야,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라고 적은 바 있다. 이 시기는 수시전형 합격보도 후 특혜 논란으로 의혹이 제기되는 시점이었으므로, 문장에 담긴 그녀의 심경은 현재 사태에도 유효하지 않았을까.

이강석의 양아버지 이승만 대통령과 친아버지 이기붕의 권력승계를 위해 벌어진 3·15 부정선거는 국민적 분노와 항거를 일으켜 결국 4·19 혁명으로 이어졌다.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를 선언한 뒤 이튿날 새벽, 경무대에 은신하고 있던 이기붕 일가는 이강석의 총에 맞아 그 자리에서 모두 숨을 거뒀고 직후 이강석 또한 스스로를 쏴 부정하게 누린 권력을 자신과 가족을 단죄했다. 사진 왼쪽 이승만 대통령, 오른쪽 이기붕

일어난 역사, 진행 중인 현실서대문 경무대의 주인은 진짜 경무대 주인이 되고 싶었다. 아직 건재한 이승만 대통령의 힘을 빌어 부통령이 되고자 했던 이기붕은 다가오는 선거 준비에 열을 올렸고, 양아버지의 권력을 친아버지에게로 잇기 위한 이강석의 노력 또한 분주했다. 1960년 1월 강력한 대권 라이벌이었던 민주당 조병옥 후보가 선거운동 도중 신병이 악화되어 급서함에 따라 단일후보인 이승만 대통령의 당선은 확실시됐으나 부통령은 달랐다. 조병옥의 죽음에 민주당의 표심은 고스란히 부통령 장면 후보에게 쏠렸고, 이 대통령과 이기붕, 자유당은 이를 저지하기 위해 공권력과 정치깡패를 동원한 대대적인 부정선거활동에 돌입, 결국 3월 15일 부통령 당선에 성공한다.이에 분개한 시민과 학생들의 항거는 들불처럼 일어나 시위대였던 마산 상고 김주열의 죽음과 4월 18일 고려대학생 피습 사건을 거쳐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급기야 4·19 혁명으로 번져나갔고, 결국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4월 26일 이승만이 대통령직 하야를 선언하자 성난 시민들의 분노는 고스란히 이기붕 일가에게 쏠렸다. 의정부 육군 제6군단 본부로 피신했다 27일, 경무대로 잠입한 이기붕 일가는 해외 망명길을 모색했으나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이기붕과 박마리아, 이강석의 동생 이강욱은 수면제를 먹고 잠들었고, 이강석은 갖고 있던 권총 두 자루로 가족을 한 발씩 쏘고 난 뒤, 자신의 복부와 머리에 총을 겨눠 방아쇠를 당겼다. 분에 넘친 권력을 휘두른 2세 손으로 끝낸, 빛의 2인자가 맞은 비참한 최후였다.

정유라의 어머니인 최순실과 박근혜 대통령의 인연은 4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초 의혹이 제기됐을을 당시엔 그저 가까운 사이로만 알려졌던 두 사람의 관계는 정체불명의 재단 설립과 대기업의 막대한 지원, 여기에 연설문을 미리 검토하는 등의 국정농단을 넘어 국기문란의 배경으로 확인되고 있다. 사진은 1979년 새마음 제전 행사에 참석한 박근혜 당시 새마음 봉사단 총재, 그 왼쪽에 당시 새마음 대학생 총연합회장 최순실. 사진 = 뉴스타파

정유라는 2015년 1월 8일 자신의 SNS에 초음파 사진을 게재하며 임신 25주차임을 밝힌 바 있다. 시기적으로 대학 입학 시기인 3월엔 임신 8개월, 만삭의 몸이었으므로 출석이 불가능했을 터. 그러나 그녀가 학교에 제출한 불출석 사유는 ‘승마 훈련과 대회 참가’였다. 결국, 1학기에 학사경고를 받고 제적위기에 처하자 2학기엔 휴학계를 제출했고, 올해 1학기에 다시 복학했으나 리포트로 출석을 대체하는 과정에서 각종 특혜를 제공받아 물의를 빚었다.그녀를 둘러싼 학교 측의 다층적 편의 제공과 특혜논란에 분노한 학생들은 종전의 ‘미래라이프대학(평생교육단과대학)’ 설립 계획 철회요구와 더불어 최경희 총장의 퇴진을 강력히 촉구하고 나섰고, 교수회까지 정유라에 대한 특혜 의혹을 규명할 것을 요구하자 결국 최 총장이 사임을 발표함으로 학생 시위는 일단락됐으나 학교 측은 “(입학 시) 특혜를 준 것은 없고, 일부 학사관리에 부실이 있었다”는 입장만 밝히며 끝내 의혹에 대한 명쾌한 답변은 내놓지 못했다. 현재 정유라는 학교를 휴학한 상태이며, 작년 말 극비리에 결혼한 남편과 한 살배기 남자아이, 어머니 최순실과 함께 독일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림자 2인자에게 쏟아진 의혹과 비난의 포화가 고스란히 2세의 부정을 밝혀내는 데 이어져 전횡의 민낯이 오롯이 드러난 셈이다.

2014 인천아시안게임 승마 단체전에 출전한 정유라. 사진 = 연합뉴스

K스포츠재단과 미르재단, 차은택과 고영태, 최순실을 중심으로 끝도 없이 쏟아지는 의혹과 정유라를 승마선수로 만들기 위해 전력을 다했던 재단과 전경련의 노력은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당초 의욕적으로 K스포츠재단을 설립하고 굴지의 대기업들이 정 양에게 명마와 최고의 승마장을 제공한 배경에는 그녀를 2020 도쿄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 만들어 주기 위해서였다는 의혹이 승마계 관계자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그러나 선수로서 그녀가 기록한 최고 성적은 2014 아시안게임에서의 69.658점(75점 만점, 단체전 출전 당시 개인기록) 이 마지막이었고, 최근 9월까지 여러 필의 말을 바꿔가며 경기에 출전했으나 저조한 성적을 이어가며 좀처럼 기량을 발휘 못 하고 있는 상태로 알려졌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국민에게 최순실, 정유라 모녀를 둘러싼 각종 비리·특혜의혹은 박탈감을 넘어 분노를 안겨주고 있다. 정유라와 같은 수업에 분반이었던 한 학생은 대자보를 통해 ‘수업을 꼬박 듣고 과제를 모두 제출한 학우가 어째서 정유라보다 낮은 점수를 받아야 했는지 설명해주시라’며 분통을 터트렸고, 앞서 정유라가 국가대표 자격을 얻기 위해 출전했던 한국마사회컵 전국승마대회에서 그녀를 제치고 유망주 A 선수가 우승하자 그녀의 아버지 정윤회가 결과에 반발해 종내에는 이를 관장하는 문화체육관광부 담당 공무원이 좌천을 거쳐 면직되는 상황에 이르기도 했다. 승마공주라는 비아냥 섞인 별명에 대한 언론 인터뷰 질문에 “공주라니까 기분 좋죠”라고 대꾸했던 그녀의 답변은 ‘돈도 실력’이고, 능력이 없으면 ‘부모를 원망’해야 하며, 공주는 ‘대충 쓴 리포트’에도 학점을 받고 학사과정을 이수할 수 있는 이 시대 그림자 권력의 내밀한 실체다. 그녀는 반세기 전 황태자의 비극을 알고 있을까? 날마다 새로운 사실이 추가되는 공주의 역사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김희윤 작가 film4h@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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