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법 없는 개혁]법 기다리다 골든타임 놓칠라…선두타자는 勞·企(종합)

[아시아경제 조슬기나 기자, 오현길 기자]정부가 여소야대(與小野大)의 구도 속에서 '입법 없는 개혁'을 본격화한다. 국회 입법절차를 거치는 방식으로는 노동ㆍ공공ㆍ금융ㆍ교육 등 4대 구조개혁을 비롯한 국정과제 추진이 어렵다는 판단에 따라, 이른바 '컨틴전시플랜(비상계획)' 가동에 나선 것이다. 선두에 선 것은 노동개혁과 기업 구조조정이다. 노동개혁은 5대 입법의 처리가 불투명해진 가운데, 현장실천 4대 핵심과제를 중심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근로소득 상위 10% 임직원의 임금인상을 자제해 청년고용을 확대하고, 임금체계 개편, 능력중심채용, 취약근로자 보호 등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또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그간 한 발 물러서 있던 기업 구조조정에 있어서도 정부가 직접 챙기기로 기조를 변경했다.이 같은 판단에는 이대로라면 내년 대통령선거 등 정치적 이슈와 맞물려 개혁 및 구조조정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노동개혁 5대 법안은 야권의 강력한 반대로 사실상 폐기 수순에 놓인 상태다. ◆폐기 앞둔 노동5법…정부, 비상계획 가동=먼저 정부는 근로소득 상위 10% 임직원의 임금인상을 자제해 청년고용을 확대하는 등 '현장실천 4대 핵심과제'를 중심으로 노동개혁을 이어간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은 18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현장실천 4대 핵심과제를 중심으로 노동개혁을 충실히 추진해 나가겠다"며 이 같이 밝혔다. 4대 핵심과제는 ▲근로소득 상위 10% 임직원 임금인상 자제 ▲직무ㆍ성과중심 임금체계 개편 ▲공정인사(일반해고요건 완화)지침 확산 ▲청년ㆍ비정규직 등 취약근로자 보호 강화 등이다. 파견근로자보호법을 비롯한 노동개혁 5대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어서지 못하고 폐기 수순에 돌입하자, 입법이 필요하지 않은 부문을 중심으로 개혁을 강행하는 것이다. 이 장관은 "우리나라 임금소득 상위 10%와 하위 10% 간 격차는 4.7배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상위권"이라며 "상위 10% 고소득 임직원의 임금인상을 자제하고 기업의 추가재원을 통해 청년고용 확대를 유도하겠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30대 주요기업과 경제협력단체가 선두에 나설 예정이다.또 그는 "1150개 중점관리 사업장을 선정해 지도하는 등 민간부문 임금피크제 도입을 확산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스펙보다 공정한 능력중심인사가 확립되도록 하겠다"며 "정기감독, 수시기획감독, 비정규직 남용방지, 갑질행위 근절 등 노동시장 격차완화도 도모해나가겠다"고 덧붙였다.이는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이 20대 국회 의석 수 과반 확보에 실패하며 연내 노동입법이 사실상 어려워짐에 따른 조치다. 1년 이상 공들어온 노동개혁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 박근혜정부의 국정동력이 크게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이 장관은 "4대 핵심과제가 실천되면 장년 일자리가 안정되면서 청년채용이 확대될 수 있고, 기업의 경쟁력이 향상되고 현재 일하는 근로자의 고용불안도 해소될 것"이라며 "일한만큼 보상받는 문화형성으로 대ㆍ중소기업, 정규ㆍ비정규직 간 격차도 해소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19대 국회에서의 노동입법 필요성도 재차 강조했다. 다만 야당이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는 파견법과 기간제법을 제외한 노동3법(근로기준법ㆍ고용보험법ㆍ산업재해보상보험법) 분리처리 가능성에 대해서는 "(정부가) 언급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라며 선을 그었다. 정부는 근로기준법 개정 등 제도적 뒷받침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정년 60세 연장, 근로시간 단축 등이 이뤄지면서 노사갈등, 소송 등 현장의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우려하고 있다. 또 고용보험법 입법 지연으로 인해 125만명의 실업급여 수급자가 1인당 평균 147만원의 손해를 입는 것으로 추산했다. ◆구조조정 칼자루 쥐었다=총선 이후로 미뤄졌던 공급과잉 업종 구조조정 작업은 속도가 빨라질 전망이다. 미국 방문 중이던 유일호 부총리는 15일(현지시간) "부실기업 구조조정을 더는 미룰 수 없다"며 "제가 직접 챙기겠다"고 말하며 정부 주도의 구조조정을 선언했다.그는 특히 "해운사 구조조정이 예정대로 되지 않으면 정부가 액션(행동)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며 "제일 걱정되는 회사가 현대상선"이라며 구조조정 1순위로 현대상선을 꼽았다. 현대상선은 수년째 이어지는 장기불황 등으로 재무건전성이 악화된 상태다.해운에 이어 철강과 조선 업계도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구조조정협의체를 통해 조선, 해운, 건설, 철강, 석유화학 등 5대 업종을 취약업종으로 분류한 바 있다. 늦어도 7월말 대기업 구조조정 대상 기업을 선정하고 10월까지는 중소기업에 대한 신용위험평가를 진행할 예정이다.그간 구조조정에 대해 '채권단 중심으로 추진한다'는 것이 정부의 태도였지만, 이번 유 부총리의 발언에서 정부 기조의 변화가 감지된다. 이 같은 발언은 입법을 통한 구조조정이 가로막혔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제기된다.당초 여당은 '한국판 양적완화'를 통해서 기업 구조조정 추진을 시도해왔다. 한국은행이 발권력을 통해 산업은행채 등을 인수해 구조조정 자금으로 쓰겠다는 의도였다. 그러나 총선 결과 여당이 2당으로 밀려나며 결국 한국판 양적완화는 첫술도 뜨기 전에 사실상 실현가능성이 없는 사망선고를 받은 셈이다.오는 8월13일 시행예정인 '기업활력제고법' 시행과 맞물려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겠다는 정부의 의지도 감지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경제5단체와 기활법 활용 지원단을 출범하면서 경제계 합동 지원 체계를 마련하기도 했다.정부 관계자는 "총선 결과와 상관없이 공급과잉 업종에 대한 구조조정을 계획대로 진행되야 한다는 것이 기본 방침"이라며 "특정 기업 위주의 구조조정 보다는 부실한 부분이 있는지 유심히 살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세종=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세종=오현길 기자 ohk0414@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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