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섬 '낱말의 습격'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취향이 인간을 대표하는 무엇이 되기까지, 인류는 먼 길을 걸어왔다. 적의 공격으로부터 살아남는 일, 굶주림으로부터 벗어나는 일, 추위를 견뎌내는 일, 압제를 이기는 일, 싸움에서 이기는 일, 경쟁에서 승리하는 일, 세상의 계략과 음모와 부정 속에서 자기를 지키는 일, 유혹과 욕망의 게임들에서 죽지 않는 일. 그 모든 일이 끝나고 나서, 혹은 그 모든 일에서 숨돌리고 나서야, '취향'의 세상이 보였다. 취향이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세상을 사는 맛이 취향으로 완성되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됐다. 취향이 그 인간이며 취향이 그 삶의 방향이며 취향이 그 존재의 모든 것이라는 것. 취향에 눈 뜸으로써 비로소 우린 사는 것의 어떤 향기를 느끼게 되었지만, 주위를 돌아봐도 자신의 취향을 이해해줄 수 있는 동지가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취향의 고립, 취향의 고독이야 말로, 하늘 벼랑에 서있는 단독자의 슬픈 초상이다. 취향이 있기에, 나는 '나'이지만, 그 취향 속에 깊이 갇히며 감당하기 어려운 기쁨과 만족의 생을 누릴 뿐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총을 들고 나타났다. 나와 똑 같은 취향이라는 이름의 총을 든 저격수.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가. 설마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는가. '저격'이란 말에는 그 예기치 못한 놀라움이 번져있다. 총 맞은 것처럼, 내 취향은 저격당하고 나는 숨이 멎는 듯한 감정의 극점을 겪는다. 총알처럼 지나간 공감의 저릿하고 뻐근한 감촉이, 황홀한 고통으로 영혼을 사로잡는다.취향이 같다는 것. 그 같은 취향이 서로를 천공에 쏘아올리며 무한대의 깊이로 공명한다는 것. 취향 저격이란 말.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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