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가 급커브를 돌자 서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한 방향으로 기우뚱한다. 중심을 잡으려고 몸을 비틀대던 내 눈에 옆에 서 있는 부녀의 모습이 들어왔다. 딸이 넘어지지 않게 딸의 어깨를 단단히 붙들어주던 아빠의 손. 뭉툭하지만 더할 나위 없이 따뜻해 보였던 그 손을 보자 갑자기 아빠가 보고 싶어졌다.
어렸을 때 엄마는 식당 일로 바쁘셨고 중학생인 언니는 나보다 일찍 일어나 학교를 갔다. 그래서 아빠 일 나가실 때 아침 밥상을 차리고 아빠 도시락 싸는 일을 국민학교 4학년인 내가 맡았었다. 물론 엄마가 해 놓은 밥, 반찬을 도시락 통에 담기만 하니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11살은 조금 어린 나이였으니까.
그렇게 부엌 드나드는 일이 잦아지다 보니 엄마 없을 때는 가끔씩 반찬도 만들고 찌개도 끓여내기 시작했다. 11살짜리가 만드는 것이라 요리랄 것도 없이 망치는 게 절반 이상이었지만 아빠가 동네 아저씨들과 집에서 반주 한 잔 하실 때마다 입에 올리는 음식이 있었다.
"우리 강아지가 두부찌개를 기가 막히게 끓이요. 지 엄마가 끓여준 것보다 낫당게~"
고기도 없이 김치, 두부 한 모 썰어 넣고 끓인 두부찌개를 아빠는 먹을 때마다 ‘맛있다, 최고다’ 칭찬을 늘어놓았다. 앉은뱅이 밥상 위에 두부찌개 가운데 두고 아빠와 단둘이 앉아 밥을 먹을 때면 아빠는 차가운 소주 한 잔 들이켜고 따끈한 두부찌개 국물 한 입 떠 넣고, 보들보들 두부 하나를 밥 위에 얹어 쓱쓱 비벼 그건 내 입에 넣어 주셨다. 그렇게 아빠 한 입, 나 한 입 맛있게 먹었던 ‘두부찌개’
김치며 두부를 한 데 넣어 끓이기만 했던 나에게 냄비 바닥에 김치를 깔고 네모반듯한 두부를 살짝 포개 담는 걸 가르쳐줬던 사람도 아빠였다. 이젠 소주 한 병 놓고 아빠와 마주 앉아 소주 한 잔, 찌개 한 입 할 수 있는 나이도 됐는데 곁에 아빠가 안 계시니 마음이 섭섭할 뿐이다.
“아빠, 오늘은 꿈에서 만나 한 잔 할까요? 제가 맛있게 두부찌개 끓여 놓을게요.”
주재료(2인분)
돼지고기(목살) 100g, 무 100g, 두부 1/4모, 애호박 1/6개, 양파 1/4개, 홍고추, 풋고추 1/2개, 대파 1/4대, 고추장 2, 된장 1, 새우젓 0.3, 다진마늘 0.5, 참기름 1,소금 약간
만들기
▶ 요리 시간 30분
1. 돼지고기는 한 입 크기로 썰고 무, 애호박은 납작하게 썰고 두부는 도톰하게 썰고 양파는 먹기 좋게 썰고 풋고추, 홍고추, 대파는 어슷하게 썬다.
2. 냄비에 참기름을 두르고 돼지고기와 무를 볶다가 물 2컵을 넣어 끓인다.
3. 고추장, 된장을 섞어서 국물에 넣어 끓이다가 무가 익으면 애호박, 양파를 넣어 끓인다
4. 애호박이 익으면 두부를 넣고 새우젓, 다진 마늘, 풋고추, 홍고추를 넣고 소금으로 마지막 간을 맞춘다.
글=요리연구가 이정은, 사진=네츄르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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