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호 경성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
성경에 이르길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고,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그 반대라고 하였다(마태복음 7:13-14). 이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국내 1위 이동통신사의 케이블TV 1위 업체 인수합병 신청 기사를 보면서 떠오른 글귀이다. 소비자를 위한 논의와 매체의 균형발전에 대한 근본적인 정책마련 등의 좁은 문 대신, 특정 기업의 이해관계만 고려한 쉬운 길을 선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케이블TV는 지역 독점사업자로서 방송의 공익성, 공공성과 더불어 지역성 실현을 위해 경쟁 유료 매체와 달리 지역의 자체 채널을 운영하는 사업자이다. 출시 이후 20여년간 콘텐츠와 기술 측면에서 지속적인 품질 개선을 이뤘고, 업계에서는 UHD 방송, 기가급 인터넷, OTT 서비스 등을 겸비해 향후 디지털 전환을 완료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또한 정부는 국내외 미디어산업의 급격한 변화에 대응하고자 2014년 케이블TV의 겸영 및 점유율 규제를 완화했고, 디지털 셋탑박스가 필요 없는 8VSB, 클리어쾀 등의 신기술도입도 허용했다. 그리고 최근에는 매체 균형발전을 위한 오랜 정책 논의에 따라 기존 IPTV 관련법을 일원화한 새로운 방송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준비되는 단계에 와 있다. 이러한 정부와 각계의 매체 균형발전을 위한 케이블TV 살리기 노력에도 불구하고 업계 1위 사업자가 자체 경쟁력 강화의 길을 버리고 경쟁매체인 이동통신사업자의 IPTV 자회사와 합병을 하겠다는 것은 우리나라 미디어산업과 정책의 현주소를 돌아보게 하는 놀라운 사건인 것이다. 현재 정부와 업계는 물론이고 학계, 국회, 시민단체 사이에서도 찬반의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역사적으로 기업 간 경쟁이 저하되어 소비자에게 혜택이 간 사례는 드물다는 것이다. 인수합병이 성사돼 지역 케이블방송이 이동통신과 IPTV의 결합상품으로 제공되면 단기적으로 소비자의 선택권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장기적으로 특정기업의 시장 지배력이 확고해질 경우 서비스의 품질과 가격은 소비자에게 유리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인수합병의 당사자 입장에서 볼 때 SK는 이동통신 1위임에도 불구하고 경쟁열위서비스인 자사의 IPTV와 상생할 수 있는 손쉬운 기회를 포착한 것이고, 케이블TV 1위 기업인 CJ는 정부정책과 업계 환경 사이에서 한계에 봉착해 매각이라는 결론을 내렸을 것이다. 그러나 소비자의 입장에서 보면 경쟁사의 존재이유가 자사 서비스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점을 간과한 SK와 지역방송사업자로서 감당해야 할 짐을 내려놓는 CJ의 빅딜로 비춰진다. 국내외에 몰아치는 스마트혁명 하의 미디어업계 위기는 케이블TV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케이블TV 상위 및 중하위 업체 모두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정확한 진단과 정책마련이 이뤄지고, 콘텐츠 및 기술 투자가 필요하다면 케이블TV 업계 내부 인수 또는 외부투자가 진행되는 것이 순서라고 본다. 그런데 제대로 된 진단과 그에 따른 정부의 정책방향이 마련되기도 전에 서둘러 진행되는 경쟁매체 사업자와 1위 케이블TV 사업자의 인수합병은 중하위 케이블TV산업의 성장동력을 상실하게 할 가능성이 크다. 전국단위 서비스를 제공하는 IPTV 방송사업자의 지역 케이블 방송사업자 인수합병은 그 자체로도 유례가 없지만 이동통신과 IPTV의 우산아래 지역 케이블TV가 존재의미를 상실하게 될 단초가 될 것이므로 신중해야 한다. 또한 피인수 기업에 대한 경영 의사결정에서 이동통신사인 모기업의 전략이 반영될 것이고, 국내 1위 케이블TV 업체의 투자와 인사 자율성 저해, 지역성과 경쟁력 상실은 업계 전체의 가치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제부터라도 정부는 공익성 등에 대한 엄정한 심사와 더불어 학계, 시민단체 등 많은 이해관계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고민해야 한다. 케이블TV 사업자들이 퇴로를 찾기보다 멀리 보고 투자를 늘리는 등 의욕을 갖게 하려면 지상파, IPTV사업자와 공정경쟁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미디어 업계와 소비자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미래성장을 대비하는 상생의 좁은 문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이상호 경성대 디지털미디어학부 교수<ⓒ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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