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로에서]한국판 '논어와 주판'이 필요하다

이은형 국민대 경영학 교수

일본에서 기업의 시대가 열린 것은 청일전쟁이 끝난 후인 1890년대 후반이다. 당시 일본의 회사 숫자는 4600여개에 달했고, 절반 이상이 주식회사였다. 이렇게 시작된 기업시대가 본격적인 성장세에 접어든 것은 1918년 무렵으로 볼 수 있다.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1918년 오사카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마쓰시타전기기구제작소'를 설립했는데 약 7년 만에 일본 최대 매출기업으로 성장했다. 이후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음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같은 해 도요타 사키치는 도쿄에 도요타 자동방직기제작소를 설립했고, 그로부터 15년 후에는 회사 내에 자동차 부서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오늘날의 도요타 자동차로 성장했다. 이 무렵 도시바, 샤프, 히타치 등의 기업이 등장했고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를 주름잡는 기업으로 성장했다.특정 시기에 세계적인 기업의 태동이 집중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기업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기 전에는 일본 역시 '기업이 자라기 좋은 토양'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메이지 유신으로 개혁 및 개방을 주도하면서 일본에는 서구 문물이 흘러들었다. 일본인들은 머리를 자르고 양복을 입었으며, 서양식 춤을 추었다. 이런 모습과 달리 사회문화적으로는 오랜 관습과 유교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사농공상의 위계가 지배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상업을 경시하는 풍조가 강하게 남아 있었다. 서구문물을 받아들이고 기업이라는 제도가 도입되었지만 사람들의 인식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던 것이다.하지만 당대의 선각자 두 사람이 '자본주의'와 '기업'에 대한 일본인의 인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학문적으로는 후쿠자와 유키치, 실질적으로는 시부사와 에이치가 바로 그들이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일본 최초의 사립대학인 게이오기주쿠대학을 설립하고 문학, 이재(理財), 법학 등 세 학과를 가르쳤는데 이재가 바로 오늘의 경제학이다. 그는 '학문의 권유'라는 저서를 통해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국가의 발전과 개인의 독립이 근본적으로 같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가를 발전시키는 방법 중 경제를 중시할 것을 설파했는데 이 책은 당시 베스트셀러가 되어 일본인의 의식을 개혁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한편 시부사와 에이치는 메이지 정부에서 재정대신을 지낸 관료 출신으로 관직에서 물러난 후에는 일본 최초로 주식제 은행을 설립했다. 이후 금융, 철도, 해운, 광산, 방직, 철강, 조선, 기계, 전기 등 다양한 분야로 사업을 확장해 일생동안 500여개의 회사를 설립했다. 평생 기업가로 헌신했던 그는 일본이 발전하려면 상업을 경시하고 권력을 중시하는 낡은 풍조를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즉 '상업을 통한 국가발전'이라는 자신의 신념을 일본 대중에게 널리 확산시키고자 전통적 유교사상과 자본주의 정신을 결합해 '논어와 주판'이라는 책을 썼다.그는 "상업은 개인이 아닌 사회를 위한 것이다. 상업은 이상적인 인격에 위배되지 않으며 오히려 이상적인 인격을 실현하는 가장 좋은 수단이다. 즉 공익이 곧 개인의 이익이며 개인의 이익은 공익을 만든다"라고 주장했다. '경영자의 모범'을 실천적으로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기업활동의 의미'를 유교사상에 근거해 제시한 것이다. 이 책도 1916년 출간되자마자 역시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일본 기업가의 교본이 되었다. 그는 일본 기업가들이 추구해야 할 이상에 대해 '사혼상재(士魂商材)', 즉 '선비'와 같은 절개와 도덕, 그리고 '상인'으로서의 재능과 실용주의 정신을 겸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가오는 새 학기에 신입생을 대상으로 '현대경영과 기업가정신'이라는 과목을 가르치기로 했다. 자본주의의 배경이 되는 경제사상, 세계 기업사, 그리고 한국 기업사를 통해 경영학도로서 균형 잡힌 시각을 갖고, 기업가정신에 대해 이해하는 계기를 마련해주기 위해서다. 그런데 우리와 비슷하게 유교적 전통을 가졌던 일본 기업사를 보면서 우리에게 없는 '중요한 한 가지'를 발견했다. 한국판 '논어와 주판', 이제라도 필요한 것 아닐까. 성장과 발전의 명분 아래 생략한 것이 너무 많은 것 같아 안타깝다.이은형 국민대 경영학 교수<ⓒ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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