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유가시대, OPEC 내부분열 심상찮다
[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38년 전 결성된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이제 죽음에 이르렀다."이는 최근 나온 발언이 아니다. 1998년 4월, OPEC의 중흥기를 이끌었던 아흐메드 사키 야마니 전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의 말이다. 그는 당시 OPEC 회원국들이 석유 생산량을 마구 늘리며 카르텔로서의 OPEC이 '종이호랑이' 취급을 받자 이같이 우려했다. OPEC 해체론마저 나오자 그는 "장기적으로 유가가 하락세에 돌입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하지만 그의 발언 이후 1년이 지난 1999년부터 유가는 점차 상승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는 배럴당 150달러대까지 급등했고, 지난 2012년에는 '유가 200달러 시대'를 예견하는 이들이 나오기도 했다. 회원국들이 감산합의를 충실히 이행했기 때문이다.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이 OPEC에 대해 미국 경제와 산업 전체를 협박(black mail)하는 존재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회원국들은 똘똘 뭉쳤다.이제 17년만에 상황은 다시 바뀌어, 야마니 전 장관의 예언이 되살아났다. OPEC의 강력한 무기인 담합이 사라지자 영향력도 눈 녹 듯 사라졌다.지난 4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OPEC 정기총회는 이런 상황을 정확히 보여준다. 회원국 대표들은 7시간의 마라톤 협상에도 감산 합의에 실패했다. 이에 대대 미국 시장조사기관 IHS의 제이미 웹스터 애널리스트는 "OPEC이 사망했음을 스스로 증명해 보였다"고 평했다.OPEC의 중심인 사우디아라비아가 미국의 셰일 혁명과 맞서기 위해 저유가 전략을 고수하면서 OPEC의 힘은 더욱 약화되고 있다. 카르텔로서의 OPEC의 힘은 회원국끼리 감산과 증산을 합의하면서 원유생산량을 조절하는 데서 나온다. 이 기능이 사우디아라비아의 전략 때문에 완전히 정지됐다. 비(非) OPEC 회원국을 무너뜨리려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전략은 같은 회원국들마저도 도탄에 빠뜨리고 있다. 이들의 국가재정이 원유수출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5위 산유국인 베네수엘라의 경우 올해 국내총생산(GDP)성장률이 10% 줄어들고, 인플레이션율은 200%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통화가치 하락으로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경제난은 정치적 지형에도 영향을 미쳐, 지난 6일 치러진 베네수엘라 총선에서 집권 좌파 여당이 16년만에 우파 야당에 참패했다. 역시 OPEC 회원국인 브라질의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 역시 탄핵 위기에 몰리는 등 정치적 불안이 고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는 폭주기관차처럼 강경입장만을 고수하고 있다. 알리 알 나이미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은 "OPEC은 석유 생산에 있어 중심적인 역할을 계속할 것이며, 얼마나 가격이 떨어지든 투자를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증산 치킨게임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다. 미국 셰일가스 업체들의 생산원가는 배럴당 20~30달러대 수준인 반면 사우디아라비아 등 OPEC 국가의 원가는 10달러대다. 가격 경쟁력 면에서는 OPEC이 월등히 앞선다. 게다가 1986년 OPEC은 이 전략을 통해 배럴당 30~40달러였던 유가를 10달러대까지 끌어내리며 북해 유전업체들을 무너뜨린 전력도 있다. OPEC의 시나리오대로 진행돼도 OPEC이 과거처럼 영향력을 회복하지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많다. 회원국간의 분열이 유례없이 심각하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OPEC을 두고 "그저 회원국 서로를 괴롭히는 존재처럼 보였다"고 평가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보고서에서 "OPEC이 세계 원유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미국 셰일혁명 전의 영향력은 되찾기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씨티그룹의 선물애널리스트 에드워드 모스도 "OPEC의 힘이 약해지면서 원유시장에서 절대적이던 카르텔의 역할이 위기를 맞고 있다"며 "OPEC의 종말이 가까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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