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핫팩'이 될 뮤지컬 열전 '라이선스 vs 창작'

'시카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베르테르' '위대한 캣츠비 Re:boot'

[아시아경제 임온유 기자] '노트르담 드 파리', '원스' 등 해외 뮤지컬이 가을을 풍요롭게 장식했다면, 겨울 무대는 국내 뮤지컬이 접수한다. 특히 이번 겨울은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과 창작 뮤지컬의 경쟁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베테랑 파워, '시카고'여죄수로 가득한 미국 시카고의 쿡 카운티 교도소. 이들은 출소한 뒤 먹고 살 궁리를 하며 유명해지려 애쓰는데 그 중에도 '원톱'은 벨마 켈리다. 어느 날 코러스 걸 록시 하트가 입소한다. 벨마는 록시에게 유명세를 뺏기자 분개하지만 혼자 버틸 수 없음을 깨닫고 록시와의 동맹을 시도한다. '시카고'의 힘은 오래된 배우로부터 나온다. 1975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시카고는 2000년부터 한국 무대에 올랐다. 벨마 켈리 역의 최정원(46)은 초연부터 무려 15년 동안이나 같은 역을 맡고 있다. '올 댓 재즈(All that jazz)'를 요염하게 부르며 등장하는 그의 모습은 맞춤옷을 입은 듯 편안하다. 최정원은 "예순 살까지 이 무대에 오르고 싶고 그럴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마마 모튼 역을 맡은 김경선(35)과 빌리 플린 역을 맡은 성기윤(44) 역시 2007년부터 꾸준히 무대에 올랐다. 성기윤은 "2000년 초연 앙상블로 시작해 15년 동안 시카고를 하고 있지만 같은 작품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 없다"며 수정 작업을 열댓 번 거친 라이선스 뮤지컬의 완성도를 은근히 자랑했다. 내년 2월6일까지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
◆향수와 몰입,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중장년층 관객이라면 제목이 같은 영화를 보았으리라. 비비안 리의 불타오르는 듯한 아름다움, 클라크 게이블의 매력을 떠올리는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작품이다.뮤지컬의 줄거리는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노예 제도가 폐지될 무렵의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네 연인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남부에서 나고 자란 여인으로서 남북전쟁에서 패한 남부를 덮치는 가난과 이별을 감당하며 강인한 여성으로 성국해가는 스칼렛이 중심인물이다.뮤지컬은 2003년 프랑스 작곡가 제라르 프레스귀르빅이 만들었다. 지난 1월 예술의전당에서 한국 초연을 했을 때는 원작 소설의 이야기와 영화의 볼거리를 뮤지컬 속에 함께 담지 못해 뒤죽박죽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그래도 중장년층 관객의 응원이 뜨거웠고, 지난 17일 예상보다 빨리 무대에 다시 올랐다.한 해 동안 숙성시킨 작품은 '몰라 볼 정도로 개연성이 높아졌다'는 평가가 잇달았다. 볼거리와 이야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는 것이다. 고급 샹들리에로 꾸민 부자들의 파티장, 쇼걸들의 농염한 군무가 더해진 술집, 총성과 화염이 난무하는 전쟁 상황 등 다채로운 장면들이 관객의 눈과 귀를 자극한다. 연출가 한진섭(58)은 적당한 양의 대사를 반드시 필요한 장면에 배치해 관객이 이야기의 흐름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미지가 우아한 김소현(40)과 시원한 가창력의 소유자 바다(35), 연기자 김지우(32)가 연기하는 앙칼진 여우 '스칼렛 오하라'를 비교하면 작품을 감상하는 즐거움이 배가 될 것이다. 내년 1월31일까지 잠실 샤롯데씨어터
◆조베르의 귀환, '베르테르'조베르(조승우+베르테르)가 13년 만에 돌아왔다. 조승우(35)의 11월 공연은 몇 달 전부터 매진이다. 그의 작은 손짓, 표정 하나에도 객석을 가득 채운 여성 관객이 탄성을 토한다. 그가 노을을 배경으로 머리에 총구를 겨누면 객석은 흐느끼기 시작한다. 막이 내리자 울음이 터진다. 2000년 극작가 겸 연출가 고선웅(47)이 괴테의 고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각색한 작품. 발하임이라는 마을에서 청년 베르테르가 이미 짝이 있는 아름다운 여인 롯데를 사랑하고 상처받는 이야기다. 결혼생활에 공허함을 느낀 롯데는 베르테르에게 사랑을 느끼지만 불길한 예감에 주춤 물러선다. 이 작품은 15년 동안 열두 차례 공연을 통해 관객 25만 명을 모았다. '명성황후'와 함께 작품성과 흥행성을 인정받은 우리나라 대표 창작뮤지컬이다. 오랜 시간이 흐르며 옅어지긴 했지만 연극 전문인 고선웅 연출의 색깔이 군데군데 남아있다. 무대는 화려함을 추구하는 대신 여백의 미를 살린다. 해바라기와 탁자 몇 개가 전부인 무대는 단조롭지만 관객이 배우의 연기에 집중하게 만든다. 내년 1월10일까지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현실과 상상력, 위대한 캣츠비 Re:boot"안 좋았어?" 캣츠비가 사랑을 나누고 나서 여자 친구 페르소에게 묻는다. 페르소는 퉁명스럽다. "언젠 좋았니?" 면접에서 불합격 딱지를 맞은 캣츠비가 면접관에게 묻는다. "경력직만 뽑으면 나 같은 놈은 어디서 경력을 쌓아요?" 캣츠비는 6년 동안 페르수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백수다. 그런데 그녀는 따분하고 궁상맞아서 싫다며 이별을 통보한다. 3일 뒤에는 나이 많은 갑부와 결혼한다나. 예상치 못한 이별에 괴로워하던 캣츠비 앞에 어느 날 엉뚱하지만 맑고 순수한 선이 마술처럼 나타난다. 작품은 한국의 20대 청춘이 겪는 현실적 고뇌와 사랑을 무대적 상상력과 버무렸다. 창작 작품이 해외 라이선스 작품과 가장 차별화되는 매력은 '익숙함'. 이 작품은 익숙함을 극대화한다. 공연 장소도 대학로다. 극장을 찾아 가는 동안 목격한 장면들이 무대 위에 그대로 펼쳐질 때마다 관객은 웃고 공감한다. 실력 있는 젊은 연기자들이 펄펄 난다. 캣츠비 역의 정동화(31)는 연극과 뮤지컬을 오가며 자기 영역을 굳혀가고 있다. 안정된 발성과 명확한 대사처리가 관객을 편하게 만든다. 페르수 역의 선우(30), 선 역의 유주혜(27), 몽 부인 역을 맡은 박선주(43)의 보컬은 파워풀한 밴드 사운드와 잘 어우러진다. 내년 1월31일 대학로 유니플렉스 대극장임온유 기자 ioy@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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