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 '생명의 다리' 철거 앞두고 … 자살예방협회 김현정 교수의 뼈있는 지적
자살시도 숫자 12배나 늘어 부작용국가 차원서 실질적 예방대책 절실
김현정 국립중앙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아시아경제 장인서 기자] '내 인생의 봄날은 언제나 지금이다'(생명의 다리 문구 일부). 지난 3년간 위로 가득한 문구로 시민들을 맞아주던 서울 마포대교 생명의 다리가 9월 철거와 함께 아쉬운 작별을 고하게 됐다. 생명의 다리 설치 이후 자살시도자 수가 오히려 증가하면서 본래 목적인 자살예방 효과에 대한 논란이 가중됐기 때문이다. 2012년 한해 15명이었던 마포대교 자살시도자 수는 2013년 93명, 지난해엔 184명으로 다리 설치 전과 비교해 12배가 늘었다. 칸 국제광고제와 레드닷 디자인어워드 등 세계 광고제에서 총 39개의 상을 휩쓸며 인지도가 높아진 것에 비하면 씁쓸한 결과였다.철거 소식이 전해지면서 삼성생명이 부담했던 연간 1억5000만원에 달하는 운영비 역시 도마 위에 올랐다. OECD 국가 자살률 1위라는 오명에도 불구, 자살 예방 정책과 예산 부담이 민간기업과 국민 개개인의 몫으로 떠넘겨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다.한국자살예방협회 대외협력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현정 국립중앙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23일 기자와 만나 "이번 생명의 다리 철거는 국민들의 자살 예방 정책이 정부가 아닌 민간의 부담으로 떠넘겨진 대표적인 예"라고 못박았다.김 교수는 "실직이나 이혼, 질병 등 다양한 이유로 죽음에 대한 충동이 촉발될 수 있다"면서 "자살시도를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고 이를 예방하기 위한 기능을 민간에 떠넘기는 한 근본적인 상황 개선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한국과 반대되는 예로 연간 3000억원의 자살 예방 예산을 유치하고 있는 일본과 자살명소에 거액의 돈을 들여 방지시설을 설치한 영국과 캐나다를 꼽았다. 일본은 지난해만도 약 2만400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파악됐는데, 이 같은 자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제1차 자살 예방 대책을 추진했고, 2011년부터는 제2차 자살예방 정책을 시행 중이다. 생명의 다리는 서울시와 삼성생명의 협력 사업으로 2012년 9월에 설치됐다. 다리 난간에 동작인식 센서를 장착해 시민들이 다가오면 불이 들어오면서 '밥은 먹었어?' '무슨 고민 있어?' '오늘 하루 어땠어?'라는 문구가 뜬다. 그중에는 '다독거려주세요(체조선수 손연재)' 등 유명 인사들의 격려글도 포함돼 있다.자살시도자에게 친근하고 따뜻한 말을 건넴으로써 위로를 주고 삶에 대한 의욕을 되살리겠다는 의도였지만 지나치게 감성적인 접근으로 지역 명소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때문에 서울시는 오는 26일까지 생명의 다리를 대신해 마포대교를 새롭게 단장할 아이디어를 공모 받는다고 밝혔다.
내달 철거 예정인 마포대교 '생명의 다리' 에 설치된 희망의 문구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공모하는 건 반드시 필요한 일이지만 다리 하나 이렇게 저렇게 바꾸는 걸로는 국민들의 자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면서 "기업의 기부금이나 국민의 아이디어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국가 차원에서 예산을 편성해 자살시도자에게 실질적인 돌파구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즉, 다리 난간에서 뛰어내리지 못하도록 물리적인 방어막을 설치하고, 자살시도자의 고충을 금융권 등 유관기관과 협력해 현실적으로 풀어갈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또한 김 교수는 "사회적으로 번아웃 증후군(탈진증후군)이 확산되고 노인 자살률 못지않게 40대 중년 남성의 자살률도 가파르게 증가하는 추세"라면서 "이처럼 당면한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가 예산 편성과 사회 지도자층과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그는 "모든 게 죽으면 해결된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것을 경계하고 언론 역시 유명인사의 죽음을 미화하기 보단 비판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며 "자살 충동이란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불쑥 찾아오는 파도와 같다. 각자가 처한 상황을 들어주고 객관적으로 진단할 수 있게 제도적으로 도와주는 것만으로도 그 위기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을 맺었다.장인서 기자 en1302@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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