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탄생 100주년 시잔치…''꼬집으면'을 '꽃이 피면'으로 들은 시인'

29일 미당 서정주 100세 생일 시잔치에서 미당 전집 간행위원회의 연구자들과 제자들이 시전집 헌정에 이어 절을 올리고 있다.

[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미당(未堂) 서정주(1915~2000년)를 두고 '꽃의 시인'이라 한다. 호는 '미숙한 사람 또는 집'이지만, 그의 시는 모국어의 위대하고 오묘한 성취로 인정받는다. 그가 지은 950편의 시 중 265편에 꽃이 등장하며, 이 중 66가지의 고유 꽃 이름이 나온다. 29일 미당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열린 시(詩)잔치에서 낭송된 여러 시구들 속에서만도 철쭉, 작약, 동백꽃 등 무수히 많은 꽃이 불려졌다. 이날 저녁 7시 동국대 본관 중강당이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번 행사는 최근 '미당 시전집'(전 5권)이 출간에 따라 열린 출판기념회이기도 했다. 시 전집은 미당 사후 처음으로 나온 정본 시전집이다. 은행나무 출판사가 전 20권 규모로 기획한 '미당 서정주 전집'의 첫 결과물로, 출판사는 내년 상반기까지 미당의 시는 물론 자서전, 산문, 시론, 방랑기, 옛이야기, 소설, 희곡, 번역, 전기 등 생전에 출간된 그의 저서를 망라한 전집들을 순차적으로 내놓을 계획이다. 시잔치 겸 출판기념회에 축사로 나선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팔십 평생 살면서 자랑할게 없지만, 이 자리를 빌어서 내 자랑 좀 하고 싶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 전 장관은 미당 생전 육성으로 시를 들었던 기억, 미당이 직접 작성한 육필시선을 첫 출간했던 영광, 미당의 칠순 고희연때 강연을 열었던 경험, 또한 미당 탄생 100주년 생일을 하루 앞둔 이날 축사를 맡게 된 점이 모두 "자랑거리"라고 했다. 이 전 장관은 "서정주 선생은 주민등록번호처럼 멋대가리 없는 숫자마저 시가 되게 했다"라고 한 뒤 한 일화를 소개했다. 어느 날 김동리 선생이 '나도 시를 썼네' 하며, '벙어리도 꼬집히면 소리를 지른다'라고 했더니, 이를 들은 서정주 선생이 '벙어리도 꽃이 피면 소리를 지른다'고 이해했다는 것이다. "미당은 '꼬집으면'을 '꽃이 피면'으로 듣는 시인이었다." 그는 이어 "서정주 선생의 귀한 시들 중 묻혀있는 것이 많다"라며 '신발'이란 시를 예로 들었다. "어릴 적 아버지가 사준 신발을 강물에 빠뜨렸는데, 그 신발이 변산반도 저 바다로 멀리 사라지는 내용이다. 새 신발 사줘도 다시는 그 신발을 신을 수 없는 아쉬움이 담겨있다. 대지와 인간이 처음 마주치면서 또한 떼어내는 '신발'의 원형, 절대 시가 될 수 없을 듯싶던 신발을 그토록 아름답게 쓰셨다."

행사장에서 선보여진 '미당 시전집'(전 5권)

행사가 열리는 도중 2년 동안의 준비 끝에 시전집을 출간한 '미당 서정주 전집 간행위원회'의 이남호, 이경철, 윤재웅, 전옥란, 최현식 위원이 미당의 옛 모습인 담긴 대형 스크린 앞에서 시전집을 헌정하고 절을 올렸다. 이들은 미당의 제자들과 연구자들이다. 이 중 이남호 문학평론가(고려대 부총장)은 발간사에서 "선생의 전집을 발간해 지고한 문학세계를 온전히 보전함은 우리 시대의 의무이자 보람이며, 나아가 세상의 경사라 하겠다"며 "그의 시 속에 담겨있는 아름다움과 지혜는 우리 겨레의 자랑거리요, 보물이 아닐 수 없다"고 했다. 이날 시잔치의 첫 막을 연 이는 배우 윤정희 , 피아니스트 백건우 부부였다. 생전 미당과 각별한 교류를 해 왔던 이들 부부는 이날 미당의 시 '자화상' 낭송과 연주를 선보였다. 또한 시인들은 무대로 올라 '돼지 뒷다리를 잘 붙들어 잡은 처녀', '한양호일', '진영이 아재 화상', '나의 시' 등 미당의 시를 낭송했다. 배우 박정자도 해금연주자 강은일과 함께 '상리과원'이라는 시를 읊었다. 박정욱 명창은 미당의 시를 판소리로 변주해 노래하며 100세 잔치굿을 벌였고, 가수 송창식도 나와 '푸르른 날'을 불렀다. 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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