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생엔 내가 엄마가 돼서 꼭 더 사랑해줄거야'

세월호 탔던 故 정지아 양의 편지, 세상에 공개1주기 앞두고 광화문서 열린 추모 문화제 눈물바다

▲ 15일 열린 세월호 희생자 추모행사

[아시아경제 원다라 기자] "16년 동안 지아 키워줘서 고마워. 엄마 덕분에 행복해. 속상해서 싸우고 운 일도 수십 번이지만~. 엄마 딸로 태어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난, 다음 생엔 내가 엄마가 돼서 꼭 더 사랑해 줄거야. 엄마 생신축하해요 어디 몸 아프지 말고 평생 죽지 말구 살아! 나랑 같이 죽어.ㅋㅋㅋ 엄마 없인 아무것도 못하는 나 두고 일찍 가면 안돼~ 사랑해♡ "단원고 2학년이던 고 정지아 양이 2012년 7월에 어머니 지영희 씨에게 쓴 편지가 낭독되자 좌중은 숙연해졌다. 여러 단어들이 모두 먹먹한 마음을 만들게 했지만, 마지막 구절에서는 눈물을 훔치기 바쁜 모습이었다.

▲ 15일 열린 세월호 희생자 추모행사에서 시민들이 분향소에 국화를 놓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1년을 하루 앞둔 15일 광화문 광장에서는 한국작가회의가 주관한 '4·16 진실 인양 촉구 문화제'가 열렸다. 광장에는 희생자들을 위한 분향소가 설치됐고, 시민들이 노란 종이를 접어 넣은 종이배가 가득 찼다. 작가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쓴 시와 정양이 생전에 어머니에게 썼던 편지도 낭독됐다.

▲ 15일 열린 세월호 희생자 추모행사 분향소에서 한 남성이 묵념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정장을 입고 서류 가방을 든 직장인이 많이 보였다. 양지원(60·남)씨는 "회사가 근처라 오늘뿐 아니라 매일 퇴근길에 들러왔다"며 "나도 아이 둘을 키워 시집·장가 보내 더 아이들을 먼저 보낸 부모들의 마음이 어떨 지 가늠이 간다"고 말했다. 직장인 오민영(여·29)씨는 "오늘 추모제가 열린다고 해서 퇴근길에 혼자 찾았다"고 말했다.

▲ 15일 열린 세월호 희생자 추모행사에서 안양예고 신희빈양이 고 정지아 양의 편지를 낭독하고 있다.

고 정지아 양의 편지는 안양예고 신희빈 양이 낭독했다. 교복을 단정히 입은 신 양이 정 양의 편지를 읽기 시작하자 맨 앞에 앉아있던 까맣게 탄 피부에 삭발한 한 유가족은 무릎을 꼭 붙이고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낭독을 듣던 시민들 몇몇은 눈물을 참으려 고개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은 모습이었다. 500석 남짓 마련된 간이의자가 모자라 서서 지켜보는 시민들도 마찬가지였다. 분향소에는 시민들이 놓은 국화꽃들이 금세 수북이 쌓였다. 친구와 함께 분향소를 찾은 양모(여·36)씨는 "다른 어떤 정치적 상황을 얘기하기보다 그저 안타깝고 슬픈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분향소 옆에는 학생들을 그린 그림이 붙어 있었다. 용인에서 왔다는 한 여성은 "세상의 어떤 꽃이 너희보다 아름다우랴...미안하다- 수지에서 한 아줌마가"라는 메모를 적어 붙인 꽃 화분 하나를 아이들 그림 앞에 놓고 가기도 했다. 이 화분의 꽃은 아직 피지 않아 희생한 아이들을 상징하는 듯 했다.

▲ 15일 열린 세월호 희생자 추모행사를 찾은 학생들이 울먹이고 있다.

단원고 학생들과 같은 또래의 학생들은 편지 낭독이 시작되자 한참을 고개를 들지 못하고 울먹이기도 했다. 고양예고 3학년이라는 이모 양은 "함께 온 친구가 단원고에 다니던 친구의 친구였다"라며 "살아있었다면 이제 내년에 대학에 가서 같이 만날 수 도 있었을 텐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각기 다른 교복을 입은 학생들도 세 시간여 진행되는 행사 내내 으레 볼법한 스마트폰 한 번 보지 않고 참여했다.

▲ 광화문 광장에서 전시중인 추모 전시 '빈방'

행사가 열린 광장 한 편에는 학생들이 떠난 빈 방을 찍은 사진들이 전시돼 있었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날까지도 입었을 교복, 평소에 쓰던 스케치북, 창문으로 햇빛이 잘 드는 주인 없는 방,'동방신기랑 대화해보기,부모님께 후회안하도록 효도하고 죽기'라고 적힌 수첩 사진들은 마치 사고가 일어나기 전인 듯 했다. 이날 행사는 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 시민들의 분향소 헌화와 공연을 마지막으로 마무리 됐다. 시민들은 섭씨 13도에 약간 못 미치는 쌀쌀한 날씨에도 자리를 좀처럼 뜨지 않으며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행사가 시작된 오후7시부터 10시가 조금 넘은 시각까지 자리를 지킨 전비단(여·56)씨는 "오늘 행사를 지켜보면서 머리가 하얘지는 것 같았다"며 "이런 슬픔 앞에서는 어떤 말도 나오지 않고 눈물만 날 뿐"이라고 말했다. 원다라 기자 supermoo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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