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수 국제부장
지난 25일(현지시간) 그리스 총선은 알렉시스 치프라스가 이끄는 급진 좌파 연합 시리자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앞으로 그리스의 운명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시리자가 정책을 좌우하게 되리라는 점이다. 시리자는 줄곧 주장해온대로 이전 정부가 진행 중이었던 개혁의 물결을 되돌리려 들까. 개혁은 그리스가 국제통화기금(IMF)ㆍ유럽연합집행위원회(EC)ㆍ유럽중앙은행(ECB)으로 이뤄진 국제 채권단인 이른바 '트로이카'로부터 지난 수년에 걸쳐 구제금융을 받으며 내건 전제 조건이다. 총리로 취임한 치프라스가 조건을 존중하겠다고 말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는 그가 27일 부총리에 야니스 드라가사키스를, 재무장관에 야니스 바루파키스 아테네대학 교수를 임명한 데서도 알 수 있다. 공산당 출신인 드라가사키스 부총리는 1989년 경제부 차관을 역임한 바 있다. 바루파키스 재무장관은 저명한 경제학자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재정위기 당시 구제금융과 긴축정책을 거세게 비판한 인물이다. 바루파키스 장관은 최근 언론과 가진 회견에서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떠나기를 바라지 않는 데다 유로존 탈퇴 운운하며 협박하는 것도 원치 않는다"는 말로 '그렉시트(Grexitㆍ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에 반대했다. "그리스가 유로존에 가입하지 말았어야 옳았지만 일단 가입한 이상 자발적인 탈퇴는 재앙"이라는 이유에서다. 이윽고 치프라스 총리는 28일 첫 내각 회의에서 유럽연합(EU) 채권국들과 채무조정 재협상을 추진해 "생존가능하고 공정하며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해결책 찾기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는 "인도적 위기를 해결하는 게 최우선"이라며 "우리는 국민을 구원하는 정부"라고 선언했다. 그리스 신정부에 대한 트로이카의 반응이 궁금하다. 그리스 신정부가 이처럼 구제금융 재협상 운운하면 트로이카는 그리스에 대한 향후 지원을 중단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유럽 정치 지도자들의 발언으로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27일 "채무조정을 논의해봐야 소용 없는 일"이라며 "유로존이 강해진 만큼 그렉시트 충격을 견딜 수 있다"고 발언했다. 다른 유로존 회원국들이 위기에 전염될 우려가 없으니 탈퇴해볼 테면 해보라는 것이다. 모든 정황으로 보건대 트로이카는 그리스의 약속 파기를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 정부가 약속을 깰 경우 그리스는 디폴트(채무 불이행)에 빠지고 현지 금융시스템이 위기에 처하게 되는 것은 시간 문제다. 현 부채 수준에서 그리스의 시중 은행이 계속 운영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트로이카가 추가 구제금융을 거부하면 그리스는 유로존에서 탈퇴해 새로운 자체 화폐까지 찍어 재정적자 메우기에 나서야 한다. 이를 우려한 예금주들이 은행으로 몰려들면 뱅크런도 발생할 수 있다. 자본이탈이 일어나는 것은 물론이다. 더 걱정되는 것은 그리스 신정부가 경제 붕괴를 막는답시고 그야말로 급진 좌파 정책에 기댈 수 있다는 점이다. 그렉시트가 현실화해도 나머지 유럽 국가들에 당장 미칠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유럽은 이미 수년 전부터 그렉시트 가능성에 대비해 온갖 조치를 취해왔기 때문이다. 그렉시트가 현실화할 경우 그리스는 재정적ㆍ경제적 혼란에 빠질 게 뻔하다. 그렇다면 스페인처럼 어려움에 처한 다른 나라의 국민은 그리스의 전철을 밟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독일처럼 상대적으로 안정된 나라의 국민은 유럽의 성장 전망을 밝게 만들어줄 공격적인 정책에 대해 지지할 것이다. 이래저래 그리스 유권자들의 선택은 다른 유럽 국가들에 타산지석(他山之石)이 되고 있다. 이진수 국제부장 commu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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