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대만 잡으면 천사가 악마로 돌변하고 양이 사자처럼 울부짖는 운전자들의 두 얼굴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각박한 세태에 숨막히는 교통체증이 아드레날린을 마구마구 분비시키면서 입은 거칠어지고 핸들은 갈지자 행보다. 혹여 누가 끼어들기라도 하면 철천지 원수를 만난 듯 쌍욕의 경적이 비명을 지른다. 아니, 저 고운 처자가 어찌 저리 입을 험하게 놀리나 놀라다가도 차에서 내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조신해지는 변신술에 다시 한번 아니 놀랄 수 없다. 며칠 전 여자 후배 차를 얻어 타고 경기도 어디쯤 다녀오는 길도 그랬다. 운전대를 잡자마자 입이 거칠어지고 눈썹이 팔자로 꺾이는 것을 보자니 안전띠를 부여잡고 어서 이 여정이 무사히 끝나기만 바랄 뿐이었다. 이런 세태를 운전자 탓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길은 좁고 차는 막히고 교통체증은 살인적인데 고상함이 다 뭐고 조신함이 무슨 소용인가. 어느 통계자료를 보니 도로에서 낭비되는 사회적 비용이 30조원이란다. 정부 예산의 8%가 길바닥에서 장렬하게 전사하는 것이다. 자동차 2000만대 시대, 양적 성장을 질적 성장이 발뒤꿈치도 따라가지 못하면서 드리워진 그늘이 이처럼 소모적이라니. 정부는 도대체 뭐 하길래 교통 인프라가 이렇게 개판이냐고 성토하려다가도 서둘러 입을 틀어막는다. '그래? 옳다구나' 하면서 정부가 세금을 또 올리면 어쩌란 말인가. 담배에 이어 자가용에 세금폭탄을 쏟아부을까봐 심히 걱정스러운 것이다. 그러니 선량한 국민들은 닥치고 운전대만 잡을 수밖에. 자동차 2000만대 시대를 일조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한전전력 부지 매입에 10조5000억원을 베팅했다는 뉴스의 여진이 가시지 않고 있다. 소주 88억병, 담배 42억갑, 커피 25억잔, 결정적으로 국민 1인당 21만원씩 나눠줄 수 있는 천문학적 금액이다. 그렇다면, 그리하여 정말 정 회장이 21만원을 전 국민에게 나눠줬다면 누구보다도 먼저 머리띠 매고 '국산차 사랑하기, 현대차 애용하기' 궐기대회에 참석했을 것,이라는 망상에 잠시 빠져본다. '과도한 베팅' 논란에도 정몽구 회장은 "국가에 기여하는 일"이라며 관련자들을 치하했으니 그 속을 어찌 알겠냐마는, 항간엔 '세금인 듯 세금 아닌 세금 같은 돈' 이라는 잡설도 떠돈다. 어찌됐든 정 회장이 이왕 테마파크를 만들기로 했으니 자동차 5대 강국의 위상에 걸맞는 선진 자동차 문화 정착에 기여하기를, 그래서 저 후배가 웃는 낯으로 운전할 수 있기를 고대해본다. 이정일 산업2부장 jaylee@asiae.co.kr<후소(後笑)><ⓒ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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