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민호 건설부동산부장
10여년 전 서울을 비롯한 지자체들이 대거 뉴타운을 지정했던 것은 도시를 좀 더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취지였다. 급속한 도심 집중화 과정에서 언덕배기나 저지대 등에 우후죽순 들어선 낡은 주택들과 상하수도나 도로 등의 기반시설을 개량할 필요가 있다고 봤던 것이다. 편리하고 안전한 일상생활을 보장하면서 노후 주택가의 미관을 개선하려는 뜻도 깃들어 있었다. 이렇게 '도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목적'에서 추진된 뉴타운의 경제학에는 사실상 개발이익 논리가 숨어 있었다. 집이 부족한 상황에서 숱하게 재개발과 재건축 등 정비사업이 추진되면서 돈을 버는 이들을 주변에서 적지 않게 봐왔던 주민들은 너도나도 순순히 개발에 동의해주기 바빴다. 몇 푼의 보상비를 받아 쥐고 삶의 터전을 포기하기 어려운 서민들이 적지 않았으나 개발주체와 집주인들의 계산은 달랐다. 개발만 하면 분양가를 높게 산정한 아파트가 속속 팔려나가는 세태에서는 아파트를 분양받는 것이 만만찮은 목돈을 쥘 수 있는 지름길이었다. 그 가운데서 사업을 추진하는 조합들은 복마전을 펼치며 이권을 챙겼다. 그야말로 '돈이 오가는 현장'이었다. 2002년부터 3년간 서울에서만 총 245개 구역에 이르는 뉴타운이 무더기로 지정된 이유다. 하지만 이런 개발 지상주의는 점차 힘을 잃어간다. 사업추진 백지화 바람이 여기저기서 일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선언한 '뉴타운 출구전략'에 따라 지난 2년간 148곳이 주민들의 의견을 다시 수렴한 끝에 개발계획을 무위로 돌렸다. 다른 지자체에서도 비슷한 사례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이 일기 시작한 것은 무분별한 정비사업이 서민들 삶의 기반을 망가뜨린다는 점에 기인한다. 개발 완료 후 집주인 재정착률이 20%에 미치지 못해 세입자들이 설 자리는 더욱 좁았던 것이다. 노후주택을 송두리째 밀어내고 아파트 단지만 지어대는 통에 오히려 도시가 답답해지고 획일화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큰 영향도 있었다. 숨바꼭질이나 딱지치기를 하던 향수 어린 골목길이 전부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담담한 지적까지 반영됐다고 풀이해볼 수 있다. 대안으로 제기된 것이 소규모로 진행하는 마을 개량 사업이다. 낡은 집과 마을길을 고치면서 주민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해 살아가도록 하자는 의도에서다. 이제는 전국 주택보급률이 102.9%에 도달해 총량이 부족하지 않은 만큼 몽땅 허물고 빽빽하게 아파트만 지어댈 필요가 줄어들었다. 이미 아파트 등 공동주택 비율이 전체 주택의 60% 이상을 차지할 정도다. 단독주택이나 타운하우스 등의 주거를 선호하는 계층이 많은 만큼 다양하게 주거유형을 제공할 필요가 커진 셈이다. 그렇다고 전면 철거형 재개발 방식이 전혀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뉴타운 개발을 백지화한 주민들이 6개월 만에 다시 투표를 통해 개발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정한 곳이 나올 정도로 현실에서는 필요하다. 서울 종로구 창신4재정비촉진구역이 대표적이다. 노후 주거환경을 끌어안고 이대로 눌러앉아서는 불편한 생활을 계속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제는 좀 더 삶의 질을 개선하고 이웃 간 소통의 창을 넓힐 수 있도록 주거환경을 바꿔야 한다는 의식이 확산되고 있다. 도시의 물리적, 사회적 질을 높이고 구성원들이 즐기면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대도시든 중소도시든 마찬가지다. 만약 개발주체가 이웃을 존중하는 마음과 민주적 의사소통이 가능한지를 살펴 주택을 분양받을 수요자를 선정한다면 어떻게 될까. 제주도 조천에서는 이런 실험적 마을 만들기가 선보였다. 주거단지의 구성과 각종 프로그램을 통해 입주자들이 서로를 배려하고 함께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이런 시도가 성공하기를 기대해본다. 그럴 때 누구나 느끼는 '행복도시'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다. 소민호 건설부동산부장 smh@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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