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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역시나 인터넷 포털 첫 화면은 '그'의 차지다. 잠 잘 때도 벗지 않을 것 같은 선글라스를 걸치고 주먹을 불끈 쥔 '의리의 남자'는 외친다. '으~리'. 곱슬머리와 구레나룻를 흩날리는 과도한 액션은 서~비스. 음료 광고 바이럴로 시작된 김보성의 으리 열풍이 인터넷 포털 광고를 접수했다. 누군가는 '언젠가 이런 물건이 나올 거라곤 생각했지만 이런 식일 줄은 몰랐다'며 해독불가를 고백한다. 또 누군가는 '의리'라 쓰고 '으리'로 읽는 '운명의 장난'으로 설명한다. 살다 보면 어쩌다 대박을 맞을 수 있다는, 꿈보다 해몽이다. 사실 열풍이란 게 그렇다. 예측불허에 뜬금없고 엉뚱하며 드라마틱하다.'으리' 이전, 그러니까 '의리' 시절의 김보성은 액션과 감성, 코미디를 버무린 기이한 캐릭터다. 영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에서 여주인공을 짝사랑하는 남학생 역할로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을 탔고 <투캅스 2>에서 주연을 맡았지만 연기보다는 기행으로 유명세를 치렀다. 어느 자리에서도 선글라스를 벗지 않는 폼생폼사 기질은, 쌍절곤을 휘두르다 이마가 찢어졌을 때 스스로 '반성'한다며 마취를 하지 않고 살을 꿰맨 '세상에 이런 일이'쯤의 한 토막 사연을 남겼다. 30년 전 영화인 <영웅본색>을 백 번 넘게 봤으며 그때마다 눈물을 흘린다는 주책없는 감성은, 주식 투자 실패로 전 재산을 날린 뒤 '주식'이라는 시(사면 내리고 팔면 오르네)를 쓰는 반전을 낳았다. 세월호 참사가 터지자 가장 먼저 분향소를 찾았고 빈손으로 갈 수 없어 은행에서 1000만원을 대출해 성금을 냈다니, 역시 머리보다는 가슴이 앞서는 남자다. 이 뜬금없고 엉뚱한 행적들이 모두 '의리' 때문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그의 주장을 듣노라면 두 손 두 발 들게 된다.그런 '의리'가 '으리'가 된 것은 미련할 정도로 우직하고 일관된 삶에 대한 '신의 선물'인지 모른다. 영특하거나 세련되지 않아서, 기회주의적이지 않아서 얻은 행운이랄까. 여기에 B급 문화에 목말라 있던 네티즌들이 옳거니 하고 덥석 물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이 로또 같은 대박도 언젠간 끝나겠지만 한 가지 질문이 맴돈다. 김보성에게 의리가 삶의 나침반이라면 우리에게는 무엇이 나침반일까. 우리는 무엇을 외치며 어떤 길을 걷고 있는 것일까. 그것이 평화든, 정의든, 인류애든, 상식이든. 주변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산을 옮겼다는 우공처럼, 헛똑똑이 기회주의자들이 판치는 이 각박한 세상에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실천은 그토록 어려운 것일까. 이정일 산업2부장 jaylee@asiae.co.kr<후소(後笑)><ⓒ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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