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 겸 연극배우 김소희20년 연기내공 '예술인문콘서트' 강연"평범한 사람이 어디 있나, 옆집 할머니도 가만히 보면 특별해"[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평범함'이란 것만큼 추상적인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여기 있는 분들 중 평범한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예를 들어 그냥 할머니는 없죠. 옆집 할머니처럼 특정한 인물이 있을 뿐이죠. 그냥 장군도 없어요. 이순신 같은 위인이 꼭 아니더라도 모두 각자의 색깔을 가지고 어떤 장군으로서 살아가지요." 극단 연희단거리패 대표이자 연극배우인 김소희(사진·45·여)가 생각하는 '인간론'이다. 그것은 대학시절부터 서울 대학로와 극단의 본거지 밀양 연극촌을 무대로 연극인생을 살아온 그가 전하고자 하는 '연기론'이기도 하다. '나와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에서 그의 인간관과 연기관이 잇닿아 있는 것이다. 최근 김 대표는 서울 동숭동 예술가의집에서 열린 '예술인문 콘서트'에 모습을 나타냈다. 강연장엔 '연희단거리패'의 팬들부터 학생, 직장인, 배우, 70대 어르신까지 다양한 청중들이 자리를 채웠다. 하얀 박스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수수한 모습으로 등장한 그는 "우연히 발을 딛게 된 연극이 나를 구원해 줬다"며 "나는 이 우주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일 수 있지만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려면 반드시 타인과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을 연극이 깨닫게 해줬다"고 했다. 원래 김 대표는 대학에서 국문과를 전공했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소설을 써 왔던 터라 글 짓는 데 욕심이 많았다. 하지만 글쟁이들과 함께 공부하다 보니 "화가 날 만큼" 자신의 실력이 부족한 걸 깨닫곤 수업보다 연극동아리 활동에 집중했다. 연기·연극을 꼭 잘해야겠다는 마음은 없었다. 그만큼 스트레스는 덜 받으면서 즐길 수 있었고, 그럼에도 주변에서 좋은 평가도 꽤 해 줬다. 그러나 대학로에서 처음 단역으로 무대 위에 섰을 때, 괴로울 정도로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나 때문에 연극 전체가 망가지겠구나. 연기란 게 그저 감정 표현을 해 내는 기술이 아니라 삶의 비밀을 들춰내는 것이구나. 100명 넘는 관객들의 시간을 무의미하게 낭비했다"라는 처절한 반성이었다. 그때부터 연극은 새롭게 김 대표에게 다가왔다. 잡을 수 없는 하늘의 별처럼 느껴졌지만, 가슴을 뛰게 했다. 타인을 관찰하고, 대본의 배역과 마주하며 끊임없이 대화하고, 연기를 위한 몸을 만들고, 스스로 곱씹고 이해하고 공감하려 노력했던 캐릭터를 온 몸으로 표현하는 것. 그는 20여년을 그렇게 훈련해왔다. "그동안 어떤 하루도 재미없었던 적이 없었다. 고통스러우면 고통스러운 대로, 즐거우면 즐거운 대로. 일상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는 것이, 친구나 가족을 봐도 '그냥 그렇구나'가 아닌 새로운 각도로 바라보는 것이 신선한 영감을 줬다. 연극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서 세속적이고 허영 많은 '블랑쉬'는 사실 평소 나라면 죽어도 이해할 수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연기를 해나가면서 블랑쉬와 같은 100명의 영혼이 나를 밀어주는 것 같았다. 나 같은 사람 때문에 이해받지 못했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해달라고 말하는 듯했다." 다른 공연 장르에 비해 연극이 주변부로 밀려가는 현실에 대해 김 대표는 "아마 셰익스피어 시대엔 연극이 가장 큰 오락거리였을 것이지만 지금의 연극은 대중적이라기보단 마니아들이 즐기는 추세"라며 "중심 문화가 못 되더라도, 관객과 정면으로 호흡하며 그 순간밖에 볼 수 없는 것을 하는 게 바로 연극"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하루를 거의 연극과 관련된 활동으로만 보낸다. "사실 세속적인 삶에 관심이 별루 없다. 본질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차도 없고, 집도 없지만 부족함을 느껴본 적 없다. 지금 내 기억 속에 들어오는 얼굴들을 어떻게 작품으로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뿐이다. 그게 나한테 맞는 일상이다" '연출가 이윤택의 페르소나', '살아 있는 연기의 혼'등 여러 별칭으로 불리는 배우 김소희는 1994년 연극 '미친 동물의 역사'로 데뷔 후 '맥베스'를 비롯한 셰익스피어 4대 비극, '하녀들', '혜경궁 홍씨' 등 주요 작품의 주연으로 활약했다.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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