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참사로 성장률하락 가능성…소비위축 보완 단기조치필요'
윤종원 IMF 상임이사
[아시아경제 이경호 기자]세월호 참사로 회복기미를 보이던 한국 경제가 급랭하고 있다. 사고 수습 와중임에도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 지난 9일 긴급민생대책회의를 주재한 것은 "상황이 예상보다 광범위하고 심각하며 심리적 불안이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절박함 때문이다. 경제혁신 3개년 계획과 규제개혁, 공공기관 정상화에 이르기까지 고강도 정책드라이브를 걸려던 정부정책의 시계는 당분간 멈춰서게 됐다. "경제는 살아움직이는 생물"과 같고 "정책에는 정답이 없다"라는 말이 새삼 실감나는 상황이다. 정부당국의 고민이 깊을 수 밖에 없다. 미국, 중국, 일본의 경제동향과 우크라이나사태와 함께 원화강세의 흐름도 예의주시해야 한다. 세월호 여파와 민간소비 둔화라는 대내변수까지 가세하면서 대내외 경제여건에 맞춘 정책대응을 해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상황을 객관적이고 냉철하고 다각적으로 분석, 판단해야 시의적절한 정책과 시너지를 극대화하는 정책조합이 나올 수 있다.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과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을 지낸 윤종원 국제통화기금(IMF) 상임이사는 정반대의 시차와 상관없이 국내외 경제,금융상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그는 "세월호 쇼크로 위축된 소비심리가 회복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면서 "이런 여파를 줄이기 위해 소비 위축을 보완하기 위한 단기 조치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경제이슈는 서로 얽혀 있어서 단편적인 대책으로 내수 부진 같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는 힘들다"면서 규제개혁과 교육개혁, 사회안전망확충 강화 등과 같은 포괄적 접근을 주문했다. 관료개혁을 비롯한 국가개조 필요성에도 찬성했다. 하지만 구조적 문제의 뿌리가 워낙 깊고 넓어 이를 고치려면 정부는 물론 사회구성원 모두 함께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분열된 사회에서는 이러한 개혁이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윤 이사는 최근의 원화강세에 대해서도 한국경제의 펀더멘터이 재평가받고 외국자본의 투자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직접적인 대응보다는 환율 충격을 감내하는 외환시장 육성과 환위험관리 강화 등 거시정책적 대응을 주문했다. 또한 환율전쟁 가능성은 낮지만 국제적인 공조는 지속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서도 세월호 사고로 충격이 컸을텐데."가슴이 아프고 무겁다. IMF에서도 총재, 동료이사 들로부터 위로를 받았다. 참사에 대한 충격과 희생자 및 유가족에 대한 안타까움은 누구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이런 일이 다시는 생기지 않도록 나를 포함한 기성세대와 공직자 들이 처절하게 반성하고 시스템을 바꾸어야 한다"▲관료개혁을 비롯한 국가개조 수준의 개혁론이 나오고 있다."시간이 걸리더라도 이번 사태의 원인을 철저하고 투명하게 짚어보고, 우리 사회의 잘못된 유인구조와 탈법, 편법 등 구조적 문제를 도려내고, 제도와 관행을 근본적으로 개조해야 할 것이다. 올바른 원칙과 상식이 몸 안을 흘러 환부에 건강한 새 살이 돋도록 해야 한다. 이번 일을 겸허하게 돌이켜보고, 무분별한 비난보다는 건설적인 자세로, 우리 사회를 안전하게 만들기 위해 각자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고 개혁해야 할 것이다. 그리해도 세월호의 희생과 아픔을 되돌릴 수 없지만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가 희생자에게 지은 죄를 조금이라도 덜고 앞으로 젊은 세대 얼굴을 마주할 수 있기 위한 최소한의 책무일 것이다"▲세월호 여파로 인한 내수부진 우려가 많다."세월호 쇼크로 위축된 소비심리가 회복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며 이로 인한 성장 둔화로 일자리가 줄거나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어려움이 커질까 걱정된다. 이러한 여파를 줄이기 위해 소비 위축을 보완하기 위한 단기 조치는 필요해 보인다. 구조적인 측면에서 내수가 부진한 원인은 기업투자가 둔화된 데다 소비여력이 늘지못했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위기 여파로 일자리가 충분히 만들어지지 못했고 자영업 구조조정 등으로 노동소득 분배율이 낮아지면서 내수 체감경기가 어려워졌다. 소득은 예전처럼 늘지 않는데 교육비, 의료비 등 경직성 지출이 계속 늘면서 많은 가구가 소비를 늘리기 어렵고 허리띠를 더 졸라맬 여유도 없다. 경제이슈는 서로 얽혀있어서 단편적인 대책으로 내수 부진 같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는 힘들다. 고부가가치 서비스 진입장벽 제거 등 규제 개혁, 보다 과감한 사회안전망 확충, 노동시장 구조 개선과 교육 개혁, 고용창출체계 및 일하는 방식 개선, 이윤 등 시장소득 창출 및 배분구조 재검토, 재정지원 우선순위 및 방식 개선 등 포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사안에 따라서는 사회적 합의가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경제성장에도 영향을 미칠텐데."기술적으로 보면 3% 후반이나 4% 성장률은 오차 범위 내의 차이이며 그간의 경제상황이나 잠재 성장수준과도 큰 차이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세월호 사태 이후 소비심리가 크게 위축돼 성장률이 낮아질 소지가 있으므로 이를 염두에 두고 정책을 펴야 할 것이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총재와 대화를 나누는 윤종원 이사
▲원화강세에 따른 정책적 대응방안이 있다면. "미국의 통화정책기조가 돈을 덜 푸는 쪽으로 움직이고 국제차입 여건이 어려워지면 달러가 다른 통화에 비해 강세를 보일 수 있다. 그런데도 최근 원화가 강세를 보인 것은 경상수지 흑자 외에 자본 유입이 계속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우리 경제의 펀드멘털이 재평가받고 안전투자처로 부각되어 우리 국채 등을 사려는 외국자본 투자가 이어지고 있다. 직접적인 환율 대응보다 거시정책적 대응이 중요하다. 작년 하반기 이후 원화 가치가 상당히 올랐고 또 경상수지 흑자가 늘어난 것이 주로 수입 둔화 때문이므로 내수 확대를 통해 수입이 늘어나게 해서 불균형을 시정하는 확대 균형전략이 바람직하다"▲국가 간의 환율전쟁 가능성은. "각국이 통화가치를 경쟁적으로 떨어트리면 누구의 이득도 없이 시장 불안만 커진다. 그런데 나라마다 국내사정 때문에 환율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주는 정책을 쓰는 경우가 많다. 불황 극복을 위해 미국이 엄청나게 돈을 뿌려 달러 약세를 야기한 것, 디플레에서 탈출하기 위해 일본이 엔저를 유도하고 스위스가 프랑 환율에 하한을 설정한 것 등이 그 예이다.이런 조치들은 그 나라 사정상 불가피한 것으로 용인되고 있지만 불가피성 판단이 어렵고 또 환율을 겨냥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환율에 영향을 주는 조치는 IMF가 늘 주의 깊게 들여다보고 있고, 국내 여건상 불가피한 조치라도 여건이 달라지면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인식이다. 최근 각국 동향이나 IMF, G20 합의 등을 감안할 때 환율전쟁 소지는 낮지만 이를 위한 국제공조는 지속돼야 한다"▲美 재무부나 IMF가 한국의 외환시장개입을 지적하고 있다."작년 경상수지 흑자가 GDP의 6%까지 늘어나는 등 대외 불균형이 커진 데 따른 지적이겠지만 미국 등 입김이 반영된 측면도 있다. 우리나라는 자본 유출입이 빈번하고 환율 변동도 심해서 중소기업 등 실물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지나친 환율 급변동을 완화하기 위한 제한적인 스무딩 오퍼레이션은 IMF에서도 용인된다.그렇지만 정부가 그간 해왔던 것처럼 환율이 시장에서 결정되도록 하고 시장 개입도 예외적인 경우로 국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경상수지 흑자를 줄이는 한편 환율 충격을 감내할 수 있도록 외환시장을 더 두텁게 만들고 기업이 환위험 관리를 강화하는 노력이 배가돼야 한다"▲IMF가 최근 고용, 소득 분배 등 포용적 성장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정책기조가 변화한 것인가."IMF는 성장, 물가, 경상수지 등 거시 및 대외경제 안정을 정책 목표로 하기 때문에 성장의 질적 측면에 대한 논의가 별로 없었고 전문성도 그리 높지 않다.IMF가 성장 위주의 거시 패러다임을 벗어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지만 고용, 소득 분배 등을 균형있게 논의되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 본다. 고용의 경우 '고용을 위한 성장(Growth for Job)' 이나 '성장을 위한 고용(Job for Growth)' 두 측면 모두 중요하다는 인식이 있었고, 소득 분배가 성장에 미치는 여러 경로의 영향에 대해서도 논의가 있었다. 성장이 되면 고용이나 소득분배가 자동적으로 따라온다는 인식에서 벗어난 것은 평가할 만 하다고 본다. ▲IMF에서 한국의 위상은 어떤가."IMF 전체 직원은 약 3500명인데 한국 직원은 45명 정도다. 한국쿼터 1.4%보다는 약간 적지만 최근 꾸준히 늘었고 중견 이코노미스트도 꽤 있다. 과장 이상 고위직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IMF 핵심 보직에 이창용 국장이 온 것은 무척 뜻 깊은 일이다. 총회 때마다 한국 대표의 지정발언을 요청해오는 것도 작지만 달라진 모습 중 하나다.▲이창용 국장과는 '절친'으로 소문이 나있다. (이창용 국장은 지난해 아시아개발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를 맡았다가 한국인 출신으로 첫 고위직인 아시아태평양담당 국장으로 진출했다)"이창용 국장은 76년에 인창고등학교에 입학해서 처음 만났으니 40년이 다 되간다. 학문적으로 뛰어난데다 공직과 민간에서 많은 경험을 쌓았고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잘 알려진 그야말로 글로벌 인재다. 작년 11월 라가르드 총재가 만나자 해서 총재실로 갔더니 "내부 발탁 등 안전한 선택을 할 수 있었지만 이 국장에게 베팅하기로 했다"면서 내정 소식을 미리 알려왔다. 내가 총재에게 "그 선택을 절대 후회하지 않을 것"이라 그랬는데 내 말이 틀리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
IMF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는 절친 윤종원 이사와 이창용 국장.
▲IMF에 근무한 소감은. "IMF는 세계경제와 국제금융 분야에 적용되는 룰을 정할 뿐 아니라 전세계 188개 회원국의 정책을 검토해서 정책 권고를 하는 기구다. 과거 우리 경제가 작고 어려웠을 때는 IMF에서 정한 룰을 그냥 받아들이고 정책 권고도 대부분 수동적으로 따랐다. 이젠 우리 국력이 커졌고 그럴 역량도 되니까 국제질서를 만드는 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IMF에서 정해지는 룰이 국익에 유리하게 우리 입장을 반영하는 게 중요하다. 주요 사안이 이사회에서 결정될 때 치열하게 각축하고 있으며 또 그런 국가 대표의 기회가 주어진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국제기구 취업을 준비하는 후배들에 조언이 있다면"작년말 라가르드 총재가 서울대에서 강연을 할 때 한 학생이 IMF 취업 방법을 물었다. 라가르드 총재가 잠시 생각하더니"Apply!(지원하세요)"라고 답했다. 국제기구에서 일하려면 상당한 언어능력과 해당 분야 전문성이 뛰어나야 하고 또 학위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떨치고 적극적으로 준비하고 지원하는 것이 어쩌면 가장 중요할 것이다. 관심 있는 기구를 꾸준히 모니터하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고 "Apply"하면 좋은 결실이 있을 것이다"◆약력▲경남 밀양출생 ▲인창고ㆍ서울대 경제학과ㆍ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ㆍ美 UCLA 대학원 경제학박사 ▲행정고시 27회 ▲재정경제원 재무정책과·금융정책과▲국제통화기금 이코노미스트 ▲기획예산처 재정정책과장 ▲재정경제부 종합정책과장ㆍ산업경제과장▲국제통화기금 선임자문관▲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장▲대통령실 경제금융비서관▲現 국제통화기금 상임이사 세종=이경호 기자 gungho@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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