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앤비전]세월호를 신자유주의로 도색하기 전에

백우진 국제부 선임기자

세월호 참사를 빚은 구조적 원인으로 신자유주의가 지목되고 있다.  선박 안전에 대한 규제와 감독을 민간 이익단체에 맡기고 정부는 해당 이익단체가 제대로 그 역할을 수행하는지 관리하겠다며 뒤로 빠지는, 그런 제도의 틀과 운영방식을 오랫동안 방치한 결과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실에서 출발해 그런 제도적인 구조에는 신자유주의적인 측면이 있다는 주장에는 일리가 있다. 그러나 그 의미는 논평의 측면을 넘어서지 못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거대담론이 아니라 제2의 세월호 사고를 막기 위한 각론이다. 선박의 안전을 평가하는 한국선급이 제시한 적정 화물량과 평형수 톤수가 지켜지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과적 여부 감시를 사업자 단체인 해운조합에 맡긴 것은 고양이한테 생선가게를 맡긴 격인데, 그렇다면 해양경찰이 직접 배가 출항하기 전에 운항규정 준수 여부를 점검하도록 하면 사고 위험을 줄일 수 있을까? 영세한 선사들이 낡은 여객선을 해외에서 들여오는 대신 새 선박을 건조시켜 운항할 수 있도록 정부가 자금을 지원하면 어떨까? 우리는 이런 구체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내야 한다.  일각에서는 사고 이후 인명 구조 과정을 놓고도 신자유주의를 탓한다. 한병철 베를린예술대학 교수는 지난달 말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기고에서 "세월호 사태의 본질은 돈이 지배하는 신자유주의로 말미암았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세월호 선원 대부분이 비정규직이었고 선장도 1년 계약직이었다"며 "그런 노동조건에서는 책임감을 갖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신자유주의로 인해 한국에서 정규직이 급격히 줄어들었고 한국의 사회적 분위기가 매우 거칠어졌고 비인간적이 됐으며 모든 사람이 자신의 생존만을 생각한다"며 "참사를 되돌아보면 구조적 폭력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한 교수는 여객선의 선장과 선박직 선원들은 정규직이 맡도록 하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일까? 그런 규정을 두고 선사들이 철저히 지키도록 하면 대형 여객선이 침몰하더라도 탈출하지 못해 숨지는 승객은 최소화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선장과 선원들이 비정규직이어서 책무를 저버렸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세월호 같은 비극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대안을 마련하는 데에도 참고가 되지 않는다.  제도와 조직은 구성원이 선하지 않다는 전제에서 출발해야 한다. 선원들이 정규직이더라도 승객을 구조할 의무를 충실히 수행하지 않을 수 있다는 가정하에 해난 사고 인명 구조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선장과 선원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경우에는 해양경찰이 이들을 지휘해야 한다.  2012년 이탈리아 코스타 콩코르디아호 사고 때는 그랬다. 좌초한 배에서 선장이 먼저 구명보트를 타고 빠져나왔지만 해안경비대장이 상황을 통제하며 승객 구조에 나섰다. 해안경비대장은 선장에게 배로 돌아가서 상황을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선장이 이 명령에 따르지 않자 해안경비대장은 남은 선원들을 지휘해 승객을 구조했다. 그 결과 콩코르디아호 승객 4200여명 대부분이 목숨을 구했다. 사망자는 32명에 그쳤다. 세월호와 달리 선원들이 배를 지켰고 침몰하기까지 시간이 6시간으로 더 시간 여유가 있었다고 해도, 이탈리아 해경이 맡은 역할을 이행하지 않았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희생됐을 것이다.  한국 해경과 정부는 무책임하고 무능했다.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는 첫 교신한 이후 31분 동안 후속조치를 세월호에 떠넘겼다. 해경은 현장에서 선박 안에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지부터 파악하고 구조에 나서는 기본 수칙을 지키지 않았다. 세월호 사고는 정부가 덜 나서는 신자유주의 때문이 아니라 정부가 상상 이상으로 무능했기 때문에 참사가 된 것이다.  세월호 사태로 한계가 드러난 한국 사회의 운항 시스템을 뜯어고칠 때다. 세월호라는 배의 색깔을 무슨 경제 사조(思潮)로 해석할지 논의는 미뤄도 된다. 백우진 국제부 선임기자 cobalt100@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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