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월세도 제대로 내지 못할 만큼 늘 허덕이며 출판사를 운영하는 친구로부터 깜짝 놀랄 만한 이메일을 받았다. 몇 년 전에 냈던 청소년용 도서 몇 권이 봄철 새 학기를 맞아 며칠새 하루에 1000권씩 팔려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소식이었지만 드디어 이 가난한 출판사에 서광이 비치는구나 하는 마음에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대체 어떤 책에 날개가 붙었냐?"고. 바로 들어온 답장은 "즐거운 만우절 보내길!". 한순간에 허탈해지면서 다음 순간 새삼 만우절이라는 걸 잊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나이 들면서 만우절을 잊게 되는 건 아닌 것 같다. 늘 웃음거리를 만드느라 애쓰는 그 출판사 친구의 농담도 참 오랜만의 만우절 장난이었지만 만우절(萬愚節)이 그 이름에서처럼 하나의 작은 명절과도 같이 여겨졌던 우리 사회에서 이제 만우절을 기념하는 풍습은 분명 예전만 못한 듯하다. 딱 하루 거짓말이 용서되고 권장되는 날. 그 만우절 풍습이 사라져가고 있는 것에 혹 우리 사회의 한 초상이 있는 건 아닌가 싶다. 진실과 거짓의 위치가 뒤바뀐 현실이 만우절을 퇴색케 하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것이다. 1년 365일 진실 만을 말하는 게 답답해서 단 하루 거짓을 허용함으로써 숨통을 틔워주며 유쾌한 탈선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 주는 만우절의 유희가 매일매일 거짓으로 점철돼 있는 세상에서라면 굳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다른 누구보다 국민으로부터 거짓을 척결하라는 사명과 권한을 위탁받은 이들부터가 대중 앞에서 담대하게 거짓과 허위를 얘기하는 사회라면 하루하루가 만우절과 다름없을 텐데 따로 만우절을 둘 필요가 어디에 있겠는가. 그렇다면 만우절은 이제 거꾸로 바뀌어야 하는 게 아닐까. 거짓을 말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단 하루 진실을 말하는 날로, 거짓이 절대로 허용되지 않는 날로 말이다. 진실을 고백하고 지난날의 거짓을 회개하는 날로, 그럼으로써 이 날만큼은 거짓을 말하는 이를 진짜 바보(愚)로 만들고 비웃어주는 날로 바꾸는 것이다. 반대로 자신이 행했던 거짓과 허위를 진실로 반성하는 것으로 보이는 이들에겐 사면을 받고 정직한 이로 거듭나는 새 출발의 날로 삼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날의 이름을 '진실의 날' '갱생(更生)의 날'로 지어도 괜찮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진정으로 이에 동참한다면 이 날을 국경일로 삼아도 될 것이다. 이명재 사회문화부장 promes@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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