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力이 國力이다-10대 과제 집중조명]<10> 경력단절
[아시아경제 이지은 기자]#1. 결혼과 동시에 회사를 나와 4년간 육아에 전념한 김수현(33세ㆍ가명)씨는 최근 가까스로 일터로 돌아왔다. 4년의 경력단절에도 불구하고 눈높이를 낮춰 작은 중소기업의 경리로 취직한 것이다. 하지만 경력단절 직전 3000만원에 달했던 연봉은 절반에 가까운 1800만원으로 줄었다. 주변 친구들이 경력단절로 취직도 못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잘 한 선택이라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아직 엄마의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를 떼어 놓고 일에 골몰하기에는 너무 대가가 박하다는 생각도 드는 김씨였다. #2. 아이를 갖게 되면서 직장을 그만 두고 육아에 전념한 이정현(37세ㆍ가명)씨는 아이가 어느 정도 자랐다고 판단해 최근 재취업 자리를 찾고 있다. 친구의 추천으로 경력무관 조건을 내건 텔레마케터 시험을 봤지만 경력단절이라는 이유로 몇 번이나 고배를 마셨다. 최근에는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텔레마케터 자리가 크게 줄면서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고 있지만, 자격증 하나 없는 이씨가 갈 곳은 마땅치 않은 현실이다.
'경력단절'의 벽은 여성들이 사회에서 더 큰 인재로 성장하는 것을 막는 두터운 벽이다. 짧든 길든 경력단절을 겪은 여성들이 다시 일터로 돌아오기가 여간해서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돌아온다 해도 경력단절 전에 쌓았던 경력을 무시당하고 한층 얇아진 월급봉투를 받아드는 수모를 감수해야 한다. 일자리의 질도 현저히 낮아 단순업무나 서비스직으로 내몰리기 일쑤다. ◆경력단절 전후…'몸값'이 달라진다 = 서울시 여성능력개발원이 지난해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서울지역 여성들은 평균 8년간 직장에서 일한 후 4년 6개월간 직장에서 멀어진다. 여성이 결혼과 출산ㆍ육아로 인해 직장을 떠나 있는 경력단절의 평균 기간이 4년 6개월 정도인 셈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4년6개월을 거치며 가장 크게 달라지는 것은 '몸값'이다. 경력단절 전까지만 해도 잘나가던 이들은 재취업에서 몇 번이고 경력단절을 이유로 고배를 마시기 일쑤다. 김씨처럼 눈높이를 낮춰 회사로 복귀한 경우에도, 예전보다 훨씬 낮은 몸값을 감내해야 한다. 여성가족부가 지난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사에 따르면 경력단절 여성이 재취업할 때의 월평균 소득은 121만9000원으로 경력단절 당시(144만원)의 84.7% 수준에 불과하다. 이러다 보니 경력단절을 겪은 여성(149만6000원)은 겪지 않은 여성(204만4000원)보다 월평균 임금 수준이 크게 뒤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취업 전 남성들에 뒤지지 않은 높은 '스펙'을 쌓은 여성 취업자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외국 유학 경험을 바탕으로 월급 300만원을 받았던 A씨는 결혼과 출산을 겪고 다시 면접을 봤다가 월급 200만원을 제시받았다. 경력단절 기간이 2년도 채 안 됐지만 경력단절을 이유로 월급을 크게 낮춰 부른 것이다. 그동안 스펙을 쌓느라 고생했던 것이 허사가 되는 것 같아 A씨는 못내 억울했다. ◆돌아와도 문제…이 일, 오래 할수 있을까 = 몸값이 내려가는 가장 주된 이유는 경력단절 여성들이 일할 수 있는 일자리의 질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고연봉 사무직에서 일했던 여성들이 서비스직으로 내몰리고, 대기업 근무자들은 중소기업으로 눈높이를 낮춘다. 여가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경력단절 이후 사무직 취업비중은 39.4%에서 16.4%로 줄고, 대신 서비스판매직 비율이 14.9%에서 37%로 증가한다. 또 제조업 취업비율 역시 33.9%에서 16.8%로 줄고 숙박업ㆍ음식점업에서 일하는 비중이 2.8%에서 10.7%로 늘어난다. 1~4인 영세 사업장에서 일하는 비율은 20.0%에서 42.9%로 늘어나는 대신 100인 이상 대형 사업장에서 일하는 비율은 27.1%에서 9.9%로 줄어든다. 경력단절 여성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가 남아있지 않은 셈이다. 환경이 이렇다 보니 경력단절을 딛고 겨우 취업에 성공한 여성들이 다시 사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여가부 조사에 따르면 경력단절 경험이 있는 여성은 취직 후 1년 내에 사직을 생각하는 비율이 14.2%로, 여성 평균(11.8%) 보다 높았다. 경력단절 경험이 없는 여성의 경우 사직을 생각하는 비율이 9.5%로 낮은 것과 대조적이다. 사직의 이유로는 '임금 수준이 너무 낮아서'라는 답변이 28.5%로 '출산ㆍ육아ㆍ자녀 교육 때문(16.3%)'이라는 대답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 능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거나 여러 일자리를 전전하는 여성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경력단절 16년째인 B씨는 "학원이나 방과 후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미술선생님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아이 엄마' 취급받는 현실에 우울하다"며 "내 전공이나 능력이 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한다는 느낌에 고립감이나 무기력증을 느꼈다"고 말했다. ◆시간선택제 일자리는 대안일까 = 정부는 경력단절 문제 해결을 위해 '시간제 일자리'를 대안으로 내놓고 있다. 시간제 일자리는 유연하게 근무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일자리로, 기업은 비용을 절감하고 여성은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어 일석이조라는 설명이다. 정부는 2017년까지 양질의 시간제 일자리 93만개를 만들고, 올해부터 공공부문에서 시간제 일자리를 만들어 여성들의 재취업을 돕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과연 이 정책이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갈린다. 시간제 일자리가 일자리 숫자만 늘리고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는 실패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정규직 일자리 대비 시간제 일자리의 시간당 임금이 2006년 62.3%에서 2012년 50.7%로 하락했다며 시간제 일자리의 질이 정규직에 비해 크게 악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금 정부가 신경써야 할 것은 일자리 수보다 질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원 에코맘코리아 대표는 "정부가 정책 수행에서 질보다 양 늘리기에 우선할 경우, 오히려 수요가 남아있는 대기업 정규직 등 양질의 일자리가 시간제 일자리로 바뀌는 부작용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여성 멘토들은 무작정 일자리만 늘릴 것이 아니라, 양질의 여성 인재를 활용하고 싶은 기업 현장의 수요도 잘 읽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영 펀비즈 대표는 "기업들에게 시간제 일자리를 적극적으로 늘리라고 떠넘길 것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쓸모 있는 여성 인재를 공급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경력단절로 인해 한동안 일을 손에서 놓은 여성들에게 정부 차원에서 전문적인 교육을 추진하고, 교육비용을 지원하는 등 양질의 여성인재를 만드는 데도 신경써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은 기자 leezn@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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