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나석윤 기자]안현수, 아니 빅토르 안(29·러시아)은 자신의 어깨를 러시아 국기로 감쌌다. 8년 만에 출전한 올림픽 첫 종목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손을 흔들어 보였다. 값진 수확이었지만 그의 세리머니는 차분했다. 러시아 대표로 정정당당히 승부를 겨뤄 올림픽 역사상 두 번째 2개 국적 메달리스트가 됐다. 하지만 경기 뒤 인터뷰에선 “(한국) 후배들에게 미안하고 안타깝다”고 했다.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태극마크를 달고 빙판 위를 누비던 기억도 스쳤을 것이다. 2006년 토리노 대회 3관왕, 2003년부터 내리 5년간 세계선수권대회를 제패한 그가 아니었던가. 거기까지였다. 국가대표가 부여한 영광과 명예는 오래 가지 못했다. 귀화. 많은 것을 포기했다. 그의 결정은 ‘금메달리스트’, ‘올림픽의 영웅’이라는 칭송을 듣는 게 아니었다. 쇼트트랙 선수로서 빙판 위에 다시 서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래서 다시 등장한 빅토르 안의 모습은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그의 질주는 ‘왕의 귀환’이라기보다 새로운 도전이고, 포기가 아닌 재도약을 말한다. 올림픽 무대에서 만난 한국 쇼트트랙의 경쟁자이고, 러시아의 새로운 메달리스트다. ‘비운의 스타’라는 꼬리표는 어울리지 않는 수식어가 됐다. 한국의 후배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코 끝을 찡하게 했다. 결승전에서 기량을 겨룬 이한빈(26·성남시청)에게는 “다른 경기가 남아 있다. 좌절해선 안 된다”며 다독였다. 그러면서도 “나로 인해 불편해지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고 전했다. 누구든 시련과 좌절을 경험하지만 누구나 이를 극복하는 건 아니다. 포기할 수도 있다. 내려놓기 어려운 달콤함도 많았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그는 ‘재출발’을 택했고, 빅토르 안으로 돌아왔다. 한국에겐 ‘무섭고도 슬픈 부메랑’. 소치에 날아든 그 부메랑은 남은 종목에서도 쇼트트랙 대표팀을 괴롭힐 것이다. 하지만 그 뒤에는 고국에 대한 애정과 후배들을 향한 사랑이 새겨 있을 것이다. 그래서 빅토르 안의 스케이팅은 감동적이고 따뜻하다. 그의 건투를 빈다. 나석윤 기자 seokyun1986@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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