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여담] 신문보기가 지겹다면

매일 신문을 읽어야 하는 건 기자의 숙명. 자기 신문은 물론 다른 신문까지 두루두루 꼼꼼히 읽고 또 읽어야 한다. 기자라면 누구나, 초년시절부터 반복해 몸에 밴 덕목이기도 하다. 어쩌다 깜박 잠시만 한눈 팔아도 현안에서 저만치 동떨어져 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오래 전 어느 편집국에선가 돋보기를 코끝에 걸친 채 미간을 찡그리고 신문에 몰입한 노기자의 어깨 구부정한 삼매경을 얼핏 목격했는데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가슴 찡한 신문사 풍경 가운데 하나다(그 노 선배는 그로부터 몇 년 뒤 어느 추운 겨울날 딱 이맘때쯤 수줍은 미소의 빛바랜 사진과 몇 줄 부음기사를 신문 한 귀퉁이에 남긴 채 서둘러 먼 길을 떠나셨다). 하긴 어디 기자뿐이랴. '졸면 죽는' 정글의 룰은 신문사를 포함한 모든 프로의 세계에 통용되는 냉엄한 생존원칙이다. 조간과 석간, 통신사에 인터넷 언론, 사안에 따라 방송에 외신까지, 시시각각 쏟아지는 기사의 양이 장난이 아니어서 정작 내 기사 쓰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남의 기사 읽는 데 할애해야 한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쌓이면 '척하면 착하는 단계'에 이르게 되는데, 제목만 봐도 기사내용을 짐작하게 되는 것이다. 때에 따라서는 바이라인만 보고도 기사의 신뢰도를 측정하게 되는데 이를테면 'A신문사의 B기자가 쓴 기사는 믿어도 된다'거나 'C기자가 쓴 기사는 20%만 사실'이라는 식의 감식안을 갖게 되는 것이다. 이쯤 되면 신문을 보는 시간이 확 줄어들게 된다. 초년시절 3~4시간 걸렸던 걸 20~30분 만에 뚝딱 해치우고 나머지 시간은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면서 유유자적하는 것이다. 과학적으로도 입증됐다고들 하는 이른바 '1만시간의 법칙'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인지, 어쩐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얼추 기자생활 10년쯤 되면 이런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실상은 기자로서 이때부터가 가장 위험한 나날이 아닐까 싶다. 나르시시즘에 빠져 반드시 읽어내야 하는 기사들까지 건성건성 넘기곤 하기 때문이다.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탁자에 그날 치 남의 신문을 수북이 쌓아놓고 한 장 한 장 소중히 읽어가던 노 선배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떠올려본다. 아홉 번째 기일을 맞아.  <치우(恥愚)><ⓒ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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