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워진 주머니, 여행 대신 영화

한국관객 영화 관람횟수 올해 1인당 4.12회...전세계 1위

[아시아경제 조민서 기자]올해 한국 관객들이 세계에서 가장 영화를 많이 본 것으로 나타났다. 멀티플렉스의 확장과 한국영화의 두드러진 성장세가 관객들의 극장 나들이를 재촉했다. 하지만 '2억 관객' 시대의 이면에는 흥행영화 위주의 양극화와 여가생활의 획일화 등의 문제도 나타나고 있다. 23일 CGV가 영국의 미디어 리서치 업체 스크린다이제스트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한국관객들은 1인당 평균 총 4.12회(예상)에 걸쳐 극장을 찾아, 전세계에서 가장 영화를 많이 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3.88회를 기록한 미국을 제친 것으로, 국민 연간 평균 4회 이상 극장을 찾은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1990년대 후반 멀티플렉스(복합상영관)가 등장한 이후부터 한국 관객들이 영화관을 방문하는 횟수는 매년 꾸준히 늘고 있다. 멀티플렉스가 생기기 직전인 1997년만 하더라도 1인당 극장관람편수는 1.0편에 불과했지만 10년만인 2007년에는 3.22편으로 3배나 늘었다. '영화대국' 미국(3.88편), 호주(3.75편), 영국(2.74편) 등의 성장세가 정체기를 보인 반면 한국 시장은 2009년 3.15편, 2010년 2.92편, 2011년 3.15편, 2012년. 3.83편 등으로 매년 지속적인 성장을 보이고 있다. 그 결과 올해 극장을 찾은 관객 수는 지난 18일 최초로 2억명을 돌파했고, 연말까지 2억100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전체 극장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한 멀티플렉스가 주로 쇼핑몰, 대형 상가 등에 위치하면서 관객들이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장소가 된 데 힘입은 바 크다. 김형호 맥스무비 영화연구소장은 "영화가 특정 연령층과 관람행태 중심의 문화생활에서 불특정 다수의 소비생활로 확산됐다"며 "그 결과 영화가 다른 장르의 문화 콘텐츠와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 소비'라는 상품으로 체인형 커피전문점과 경쟁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 일부 대기업들무엇보다 대중들이 영화관을 자주 찾는 이유는 공연, 스포츠, 여행 등 다른 여가생활에 비해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경기불황으로 사람들의 지갑이 가벼워진 최근의 상황에서는 저렴한 문화상품인 영화로의 '쏠림'현상이 심화된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들이 한 달 평균 여가비로 지출한 금액은 희망여가비 19만8000원보다 낮은 12만5000원으로, 이마저도 2010년보다 4만3000원이 줄었다. 또 10명 중 4명은 '경제적 부담'때문에 여가생활에 만족하지 못한다고 답했다. 이들이 희망하는 여가활동은 여행이나 문화생활이지만 현실은 TV시청에 만족해야 하는 상황이다. 저렴한 문화생활로 영화관람을 선택하고 있다는 얘기다. 영화관객의 증가는 대중문화로서 영화의 입지를 더욱 탄탄하게 하고 있지만, 관람문화의 다양성 측면에서도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다. 지난해 서울시 조사에서도 지난해 1년간 한 번이라도 문화예술 작품이나 스포츠 경기를 관람한 시민은 65%로 집계됐지만 이 중 57.3%가 영화 관람에 편중돼있었다. 연극(15.1%), 전통예술공연(4.2%), 음악·무용 발표회(4.9%) 등은 낮은 수준이었다. 2011년도에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조사한 설문에서 국민들이 1년에 음악, 미술/사진, 문학, 연극, 뮤지컬, 전통/국악, 무용 등 공연 관람횟수는 1회가 38%로 가장 많았다. '한 번도 보지 않는다'는 비율도 8.6%에 이르렀다. 한 공연 관계자는 "영화시장은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연극 등 순수예술은 관객들의 외면으로 빈사상태 직전"이라며 "정부도 '한류3.0' 등을 내세우면서 케이팝, 영화 등의 지원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영화 내부적으로도 속을 들여다보면 양극화 문제가 더욱 심해진 한 해였다. 대작 및 대기업 배급사의 작품에만 관객이 몰려 작은 영화들은 관객을 만날 기회조차 박탈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올해 한국영화 흥행 10위에 든 작품의 매출액은 전체 33.5%에 달했다. 외화까지 포함한 총 상위 20위 안에 든 영화의 매출액은 전체 매출액의 56%를 차지하면서 저예산영화나 독립영화가 설 자리도 줄었다. 김수현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정책센터 연구원은 "대기업의 배급과 극장 수직계열화 등으로 일부 잘되는 영화에 돈과 관객이 몰리는 쏠림 현상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조민서 기자 summer@asiae.co.kr<ⓒ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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