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동여담]콤플렉스에 대하여

아주 오래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태어나 처음 한 일은 목청껏 소리 높여 울어 젖힌 것이었다(살면서 그때처럼 자랑스럽게, 그리고 남 눈치 안 보고 시원하게 울어본 적이 또 있었던가). 그렇게 기도를 뚫어 허파로 공기를 받아들였고, 입술을 꼼지락거려 젖을 찾아 주린 배를 채웠다. 스스로 생존을 담보할 수 없었기에 의식주는 물론 돌아눕는 것조차 남의 손을 빌어야 했다. 하루 몇 차례 대소변 보는 것까지 주변의 도움을 받아야 했으니 더 말하면 뭐하랴(누가 보건말건 수시로 아무 곳에서나 발가벗겨졌고, 때와 장소 가리지 않고 먹고 싸고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창피하고 부끄러운 시절이었다). 그때 온종일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면밀히 살피며 때 되면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앞뒤를 닦아준 이가 한 분 계셨는데 그 곁에는 늘 어린 아이 하나가 달라붙어 있었다. 몇 해 앞서 태어났지만 그 역시 아직은 자존이 불가능해 보였고, 그 때문인지 나에게 맞춰진 어머니의 시선을 분산시키기 일쑤였다. 그는 지독한 욕심쟁이인 데다 매사에 훼방꾼이었다. 어머니는 물론 집안의 모든 걸 공유했는데, 수시로 내 것을 탐했다. 때론 폭력을 동원해 빼앗아 가기까지 했다.  넋 놓고 당할 수는 없었기에 끈질기게 저항했다. 툭하면 울었고, 수시로 고자질을 했으며, 시선을 끌려고 며칠씩 입을 닫고 떼를 쓰기도 했다. 늘 그런 건 아니었지만 그 전략은 주효해서 둘이 다투면 매번 형이 혼나곤 했다. 그러나 몇 년 뒤 동생들이 잇달아 태어나면서 내 입지는 고립무원이 돼 버렸다(내 의사와 무관하게 중간에 끼어버린 것인데, 이런 걸 운명이라고 하는 걸까 숙명이라고 하는 걸까). 며칠 전 형제들이 모여 함께 식사를 했다. 이제는 모두 짝을 만나 자식 낳고 제 가족끼리 모여 산다(더 이상 한 집에서 살지 않는다). 단골 대화 가운데 하나가 자식 놈들 옥신각신 다투는 얘기인데, 우리의 그 치열했던 전투에 대해선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다 잊어버린 것일까).  누군가 '가장 원초적 콤플렉스 대상은 바로 형제'라고 했다는데, 그럼 요즘 흔해진 외동아들, 외동딸의 콤플렉스는 무엇일까, 궁금해진다.<치우(恥愚)><ⓒ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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